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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예지야, 넌 나중에 졸업하고 뭐 할 거야?"
"난 기자하고 싶어! 전공 살려서 국제부 기자하면 좋을 것 같아."
"그래? 근데 기자 진짜 힘들다던데. 남편감 기피 1위가 기자라잖아. 만날 밤새고 장난 아니라던데."


▲ 지금은 더이상 쓸 수 없는 인턴기자 명함
ⓒ 차예지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는' 기자라는 직업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무척 매력적이다. 기자가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자가 무척 힘든 직업이라는 것. 힘든 것에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체력적인 부분이다. 사건이 터지면 휴일이고 새벽이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기자다. 할 일이 있으면 밤새워 하기보다 낮에 일찍 끝내고 자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이기에 이런 점을 걱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힘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기사 쓰기가 좋았던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직에 도전했고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기자가 힘들다 한들 그렇게 힘들까?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멋모르고 시작했던 인턴기자 첫 날부터, 나는 사람들의 말이 옳았음을 느꼈다. 총 6주간의 인턴기자 활동기간 중 2주는 교육을 받았다. 하루에 세 시간씩 수업을 받다가 8시간의 '연강'(연속강의)을 들으려니 정말 힘들었다. 나는 8시간의 수업을 소화하고 저녁에는 뉴스를 받아쓰고 기사를 쓰는 숙제까지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 죽을 맛이었다. "피곤해 죽겠다"고 하소연 하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는 잠을 못자도 안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

하지만 힘든 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이제까지 기사 쓰면서 제목 뽑는 것이 어려워 엉터리 제목을 쓰고 편집부에 맡겨버렸던 나는 교육에서 제목 뽑는 법을 배우면서 제목을 신경 써서 뽑기 시작했다. 리드 쓰는 연습도 계속 하면서 리드도 정성을 기울여 썼다. 2주 간의 교육 후, 나는 조금씩 '기자'가 되어갔다.

"철저한 사전 조사는 좋은 기사의 밑거름"

2주간의 '빡 센' 교육을 받고 사회부에 배치된 나는 첫 취재로 신정아 전 동국대교수 사건 진상조사 기자회견을 '명'받았다. 그 당시 동국대에서는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이제까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정아 전 교수 외에도 굿모닝 팝스 진행자 이지영씨, 만화가 이현세씨 등이 허위학력을 고백해 온 국민의 관심이 진상 조사에 집중되어 있을 때였다.

▲ 긴장의 도가니탕이었던 첫 기자회견 취재
ⓒ 이경태
큰일을 취재하러 간다는 기쁨도 잠시. 이랜드 사건를 취재하러 간 선배 이경태 기자가 못 오면 내가 혼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오마이뉴스 대표(?)로 이 소식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나는 겨우 인턴인데 잘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동국대 본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실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ㄷ'자 모양 테이블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엄청난 수의 방송 카메라가 와 있었다.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긴장하면서 주변을 슬쩍 슬쩍 둘러보면서 기자회견실로 들어갔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테이블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져간 노트북을 켜서 이제까지 신정아 전교수 사건 관련 기사를 읽어보는데 기자회견 전까지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다행히도 이랜드 사건 취재를 마친 이경태 기자가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 기자의 지시에 따라 나는 열심히 기자회견 내용을 '속기'했다. 회견이 끝나고 기자들이 질문을 하는데 나는 그 '저돌적인' 어투에 놀랐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과 진상조사위원회의 말이 다르면 강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사전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면 진상조사위원회의 말만을 그대로 믿고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기자들은 굉장히 예리했다. 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보면서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취재는 용기 있게"

하늘이 인턴기자들을 돕느라 그랬는지 몰라도 6주의 인턴생활 중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여러 개가 터졌다. 그 중 하나가 이랜드 홈에버 파업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노사 간의 대립이었던 이랜드 파업은 나중에는 노조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홈에버 입점 점주들과의 대립으로 치달았다.

나와 김미정 인턴기자가 투입된 날은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점주들과 노조의 대립이 있었다. 양쪽은 전경들을 사이에 두고 물병을 던지며 몸싸움에 욕설을 주고받았다. 그러한 광경을 처음 봤던 나는 처음에 너무나 놀라서 인터뷰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나를 대신해 김미정 인턴기자가 용기있게 점주들과 이랜드 직원들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김미정 인턴기자가 말을 걸면 나는 그 옆에서 열심히 내용을 받아 적었다. '저 사람들은 노조에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아무 데도 말할 곳이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한 점주와 인터뷰할 때는 나도 같이 눈물이 나올 뻔했다.

▲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홈에버 취재
ⓒ 선대식
한번은 회사 측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폭언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김미정 인턴기자는 이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계속 다른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도해 나의 귀감(?)이 되었다.

진정한 기자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이후 다른 취재에는 용기를 내어 열심히 인터뷰를 했다.

"기자에게 체력은 국력"

아프가니스탄에 봉사를 간 한국인들이 피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는 협상 시한을 밤 11시 반으로 정해 그 전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한국정부를 협박했다. 다행히도 그 시한이 그 다음 11시 반, 또 다음날로 연장되었다. 시한이 연장됨에 따라 기자들이 현장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언제 어떤 발표가 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기자들은 그 당시 한민족복지재단에서 잠시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도 이병기 인턴기자와 함께 한민족복지재단에 같이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좁은 사무실에는 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뒤늦게 간 우리는 앉을 책상과 의자조차 없어서 구석에 바닥에 앉아야 했다. 며칠 밤을 새다시피해 피곤한 기자들은 층계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기사를 쓰다보니 나중에는 엉덩이와 허리, 목이 아팠다.

나는 그 날 하루였지만 다른 기자들은 몇날 며칠을 계속 그렇게 있어야 했다. 사태가 장기화되어 아직도 현장에는 기자들이 그때 내가 봤던 것처럼 취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재를 하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체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기자는 체력이다'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렇다면 오마이뉴스 인턴은 왜 '알파걸'인가? '알파걸'은 공부,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들을 능가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제약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여자'다. 기자가 되려면 다른 어느 분야보다 남성만큼의 체력과 폭넓은 지식,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기자 세계에서는 '남자냐 여자냐'보다 '그 사람의 글이 어떠냐'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여성들이 자신의 성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오마이뉴스 여자 인턴들은 남자들만큼, 혹은 그 이상의 용기와 지식, 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취재를 할 때만큼은 아무도 '연약하고 수줍은 여대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마이뉴스의 경우 인턴이라도 선배 기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책임지는 기사를 쓰기 때문에 더 좋은 기사를 위해 스스로 알파걸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6주는 내 인생에서 6개월만큼의 의미를 지닌 시간이었다. 비정규직 법에 대해 열 번 읽어보는 것보다 한 번 현장에서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귀한 경험을 '돈까지 받으면서' 했으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차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인턴, #신정아, #홈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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