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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턴은 삐리리다'

인턴으로서 쓰는 마지막 기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저 삐리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나의 6주 동안의 생활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 여러가지 교육을 받던 처음 2주동안의 기억을 되돌아 보았다.
ⓒ 황승민
'세렌디피티(Serendipity)' - '운 좋은 뜻밖의 발견'이라는 말이다. <오마이뉴스> 6기 인턴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 6주가 끝난 오늘까지 내가 얻은 모든 것은 이번 여름 인턴을 하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었던 '세렌디피티'들이다.

누군가 "넌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내 마음 속 자아는 외친다. '기자! 기자! 기자 될 거야!' 하지만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도 그렇다고 풍부한 상식도 갖고 있지 않았던 나는 내 꿈을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저 동경의 대상일 뿐 실제로는 먼 산 저 멀리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각주 : 여기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 운수 좋은 뜻밖의 발견(물)을 뜻한다.

세렌디피티 하나. 자신감

인턴으로서 첫 교육을 받던 날 한 선배가 우리 모두에게 물었다.

"기자하고 싶은 사람?"

사방에서 번쩍번쩍 올라가던 손들. 나는?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다 그제야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나와 저 사람들의 차이는 뭘까? 왜 나는 바로 손을 못 들었지?'

자신감이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화가 많이 났다. 기자의 꿈을 품고 인턴지원서를 냈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자신 있게 올라가지 않았다.

곧 이어 우울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게 구원처럼 내려온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너희가 무엇을 얼마큼 채워왔던 모든 것을 비우고 시작해라, 비워내고 겸손해라"

그 선배의 저 말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좌절'이라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직전 그것들을 막아준 방패와도 같았다.

'나는 충분히 많이 비어 있으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채워나가면 되겠지?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인턴 기간 동안 그 선배는 수많은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참 많이 북돋아 주었다. 선배의 끊임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세렌디피티 둘. 용기

2주간 모든 이론 교육을 마치고 우리들은 실전에 투입되었다. 나는 다른 인턴들과는 다르게 정치부와 사회부 두 부서에서 두루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교육 때는 빨리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싶은 열망에 불타올랐지만 막상 실전에 투입된 후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 황승민이라고 합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턴이요?"라며 무시하던 취재원도 있었고, 대학생이라는 말에 두 손을 부여잡고 "승민씨 반가워요"라며 심하게 반겨주던 부담스러운 취재원도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지난 달 29일 이랜드 노조원들의 뉴코아 강남점 재점거 현장에서였다. 뉴코아 주변은 200여명이 넘는 경찰 병력과 개인 점주들, 노조원이 대치하고 있었다. 거기에 여러 매체에서 온 기자들과 항의하러 나온 주민들까지 섞여 아수라장이었다.

점거 농성이 벌어지고 있던 지하 1층 킴스클럽은 경찰과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내부에 들어갔을 때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취재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자와 취재원으로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기보다는 친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반대쪽에서는 용역업체 직원들과 남자 노조원들 간 욕설이 오가고 소화기를 뿌려대는 대치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뿌연 소화기 분말 때문에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이 낯선 풍경이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 놀러온 사람도, 구경을 온 사람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글로 그리고 사진으로 전해야 하는 기자로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 이랜드 노조와 연대한 대학생들이 카트와 화초로 쌓여진 바리케이드 건너편 용역업체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대치 상황 중 심한 욕이 오고갔고 소화기가 발사되어 주변이 온통 뿌옇게 되기도 했다.
ⓒ 황승민
쌓여 있는 카트들을 넘다가 다리를 삐끗하기도 하고 소화기 분말 때문에 속이 미식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은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가슴이 뛰었던 내 평생 잊지 못할 날들 중 하루로 기억될 것 같다.

세렌디피티 셋. 인연(人煙)

인턴을 하면서 참 부족한 것이 많음을 하루하루 실감했다. 하지만 내 옆에는 호기심을 해결해 줄 선배들이 있었고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곳을 향해 달리는 동기들이 있었다.

첫 날을 생각하면 참 많이 어색했는데 어느새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들어버린 우리 동기들. 내가 정치부에 발령받아 여의도로 출근하던 그 한 주 동안에도 어찌나 동기들이 그립던지 퇴근 후에 광화문 사무실을 찾기도 했다.

까불까불하고 하루에도 수십 개씩 질문을 쏟아내는 내가 싫증이 났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싫은 소리 안하고 그저 귀여워라 해준 우리 인턴 동기 '한다스'. 6주라는 시간 그래봐야 40일 정도의 시간 함께 했을 뿐인데 느낌은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 같다.

마지막 주에 들어서는 출근을 하면서 '아 인턴으로서 마지막 월요일이네' '다음주 월요일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 발걸음이 무거웠다. 회사에서도 선배들의 '이번이 마지막 주네' '마지막인 만큼 열심히 해라' ' 다음 주부터는 못 보겠구나' 등의 아쉬운 소리가 이어졌다. 말끝마다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나는 매번 '마지막 아녜요' '또 올 거예요' 등 말대답을 늘어놓으며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서운한 것은 수년을 반복해도 매번 똑같다. 내가 <오마이뉴스> 인턴생활과의 작별이 더욱 섭섭한 건 그 40일 동안 만끽한 용기와 도전, 자신감과 겸손함 등 40가지가 넘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니들이 (중략) 만난 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야. 인연이라는 게 좀 징글징글하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中)

마지막 회식을 하던 날 우리를 가르친 선배가 떠올린 저 인연이라는 정의. 백 번, 천 번 공감하며 참 마음이 짠했다.

우리가 인턴기자의 옷을 벗던 날 오연호 대표기자 이하 많은 선배들이 하나 같이 한 이야기가 있다.

"오마이뉴스와 여러분들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거죠."

▲ 수료식이 있던 10일 오연호 대표와 6기 인턴기자들의 기념촬영. (뒷 줄 왼쪽부터) 병기 미정 귀자 재인 한내 오연호 대표님 승민 영화 주현 예지 (앞 줄 왼쪽부터) 상익 기영 광민
ⓒ 전관석
그렇게 지난 10일 우리 인턴 12명은 수료증을 받았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었던 40일간의 뜻밖의 행운 <오마이뉴스> 6기 인턴 생활. 뜻밖의 우연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면, 이제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을 내 스스로 이어가며 깨달음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이제 어느 누가 묻더라도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제 꿈은 기자입니다" 라고.

지난 40일처럼 매일 볼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은 앞으로도 함께 할 동기 언니 오빠들이 있기에 그리고 내 머릿속의 수많은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수 있도록 도와줄 든든한 선배들이 있으니 말이다.

태그:#인턴, #세렌디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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