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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출구는커녕 비상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암흑 속에서 헤매는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여유롭고 행복한 인생, 아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이었다. 문제는 계속 걷고 있지만, 배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계 속 바늘처럼 시간만 흘러갔다. 때가 오면 모든 짐을 내려두고 훌훌 떠나리라.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 MC 스나이퍼의 노랫말과 달리,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년을 견디다 한계점에 도달했다.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고, 그렇지 않은 날은 수면제를 복용했다.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병원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한 움큼의 약은 내 감정의 스펙트럼을 움켜쥐었다. 그렇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갱년기, 번아웃 증후군, 어떤 말로도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무기력하고 불안정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시기에,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제임스 홀리스. 더퀘스트. 2018)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의 섀도우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나부터 사랑하기다. 나를 둘러싼 모든 멍에를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부터 아끼고 챙기는 것. 앞으로 남은 인생을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은퇴를 결심했다.

치과 의사 원장으로 20년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현수막의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고맙다, 친구들아. 행복을 찾아 다시 돌아오마.
▲ 직원들이 준비해 준 송별파티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현수막의 문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고맙다, 친구들아. 행복을 찾아 다시 돌아오마.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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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반응은 명확히 둘로 갈렸다. 부럽다, 그리고 미쳤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료나 선배들은 한결같이 부러워했다. 객기나 만용이 아닌 용기로 받아들여 주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지쳤거나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 버텨내며. 내 직업은 치과의사다. 미쳤다는 반응은 짐작하고 남는다.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인데, 배가 불렀구나, 등등.

이십 년을 원장으로 불리며 살았다. 이름이 사라지고 직업이 나를 대체한 시간들이다. 익숙해지기는커녕, 맞지 않는 옷의 소매나 기장을 접어 올린 채 버둥거리며 살아온 기분이다. 이제는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 직원들이 송별 파티 때 제작해준 현수막의 문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정혁이는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평생 놀아도 좋을 만큼의 부를 축적했을 리 없다. 남들 다 하기에 따라 했던 주식도 망하고, 가끔 사기도 당하고, 재테크에는 적성도 없다. 그래도, 흙수저에서 출발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고민 없이 한우 사 먹을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닌가. 파이어 족의 개념조차 모르고 그저 열정만 불살랐던 세대다. 치과를 양도하고 남은 대출금 갚고 나니 쥐어진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방의 소도시에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은 성적이 고만고만하다. 서울·경기 지역의 친구들처럼 아이들 학원비에 영혼을 갈아 넣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기특하고 고마운 효자 녀석들. 공부는 천 가지 재능 중에 그저 한 가지일 뿐이라고 어릴 적부터 세뇌(?)한 보람이 있다. 한 가지만 잘해서 밥만 먹고 살아라. 그 한 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면 금상첨화다. 아빠가 해주는 인생 가이드였다.
 
무지개를 찾아서, 자유를 찾아서. 잠시 곁을 떠나는 아빠를 응원해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자유를 찾아서 무지개를 찾아서, 자유를 찾아서. 잠시 곁을 떠나는 아빠를 응원해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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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애써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고 듣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결혼 15년 차면 감을 잡고도 남는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마침내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시간과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제 무엇부터 할까?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며 반환점을 돌았다는 표현을 쓴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뜻은 분명 아닐 테고. 어지간히 겪어보고 살았으니,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여유와 행복을 찾으라는 의미로 해석되리라. 나는 이 표현을 당차게 거부한다.

'백세인생'이 화두가 되는 세상이다. 기력도 열정도 없이 백 세까지 살 생각은 없지만, 오십 보 양보해서 그리된다 치자. 아직도 살아갈 날이 50여 년 남은 셈이다. 반환점은커녕 지금까지보다 더 살아가야, 더 달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부지기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은 전국 일주다. 지역별로 한 달쯤 살아보며 배우고 느끼고 글 쓰는 일. 작년 이맘때, 제주에서의 출퇴근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육지에서 3일 일하고, 제주에서 4일 살아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결국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였지만, 제주에서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시작해 볼까? 속초, 부산, 목포...

전국 일주 아니고 엄마와 함께

그러다 문득 누군가 떠올랐다. 시간이 많지 않은,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존재. 바로, 엄마다. 열아홉에 집을 나와 30여 년을 타지에서 생활했다. 중고등학교 때도 집보다는 독서실과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니, 기억이 머무는 엄마와의 시간은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더구나, 엄마는 3년 전 황혼 이혼에 성공해서 혼자 살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아궁이에 밥 짓는 연기가 굴뚝 위로 흩어지고, 마당 가득 벌겋게 고추가 익어 가는, 꿈엔들 잊힐 리 없는 그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타향살이하는 귀한 자식, 이제나저제나 올까 뒷켠 처마에 무청 시래기를 말려놓고 기다리는 엄마도 물론 아니다. 20년째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쿠팡에서 장을 보며, 인터넷뱅킹으로 손주들에게 용돈을 보내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올해 일흔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큰아들의 귀향 소식에, 엄마는 월남에서 김 상사가 돌아왔을 때처럼 버선발로 덩실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때마침 둘째 아들도 코로나 직격탄을 맞고 잠시 쉬러 본가에 와 있는 중이었다. 쓸쓸히 혼밥을 하던 엄마에게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같은 두 아들이 동시에 솟아오른 것이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는 관절염으로 거동이 편치 못한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엄마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열 가지만 적어보라고 했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나훈아 콘서트나 로또 당첨 같은 실현 불가능한 목록을 적을까 봐 한편으로는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야 BTS도 만나게 해줄 만큼 의욕이 넘치지만,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분명 존재한다.

두 번째는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음식을 배우고 기록해두기 위함이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대부분 자식이 엄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 한 끼 아닐까? 엄마의 음식은 엄마 그 자체고, 엄마의 요리는 향수의 본질이다. 그런데 엄마가 해주는 엄마 밥에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이 허락되는 나날들이 점차 줄어드는 엄마의 솜씨를 미리 배워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셋이 합친 나이 165세의 엄마와 아들 둘의 활기찬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태그:#내가누군지도모른채마흔이되었다, #스마트치과, #축자유, #핸드피스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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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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