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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순아! 솔밭 아지매집에 가서 돈 받아 오이라."
"옴마는 내만 심부름 시킨다."

"가시나가 갔다 오라면 갔다 오면 되지 무신 말이 그리 많노."
"동수는 왜 안 시키노. 동수 심부름 하나 시킨 적이 있나?"

"그러모 같이 가라. 돈 단디 받아 오이라 알겄나."
"얼마 받아오면 됩니꺼?"
"2천원이다."

30년 전 일이다. 그때 난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누나는 한 살 위였다. 어머니는 35살에 나를 낳았다. 지금은 의학도 발달했고 결혼 적령기도 늦어져, 35살에 아이를 낳는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기 위해 목숨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바람불면 날아갈까 눈·비오면 감기들까 노심초사, 애지중지하셨다. 따라서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자잘한 심부름은 누나가 도맡아 했다.

하지만 누나는 그게 항상 불만이었고, 이날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누나는 끝까지 나와 함께 가야한다고 우겨,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냈다.

"누나 솔밭 아지매 집에 가려면 멀재?"
"하모. 20분은 걸어야 한다. 니는 심부름 처음 해보재?"

"응! 누나는 심부름 많이 해 밨재?"
"우리 집 심부름은 내가 다 한다 아이가? 심부름 뿐만 아니라 막내도 내가 다 키웠다 아이가?"

누나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막내가 태어났다. 누나는 어머니께서 농사일로 바쁘시면 막내 때문에 한 달에 열흘 정도는 결석을 했다. 요즘도 자신이 공부를 못한 이유는 이 때 한 결설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한다.

"막내 업어준다고 누나는 힘들끼다."
"좀 힘들다. 막내는 막내고. 동수야?"
"응?"
"아이다. 나중에 말할게."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누나는 솔밭 아주머니댁에 도착할 때까지 말을 하지않았다. 솔밭 아주머니는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 선뜻 돈을 주셨지만 불안해 하셨다. 요즘에야, 버스 두 번 타면 2천원이 날아가지만 30년 전에는 큰 돈이었다. 당시 아이스크림 가격이 30원이었으니, 2천원은 초등학생이 만져보기 힘든 그런 액수였다.

"니들 옴마는 어린 것들 한테 2천원을 받아 오라꼬 심부름을 보내노. 조심해서 가지고 가라. 잃어버리지 말고 알 것나!"
"알았어예 잘 가지고 갈게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누나가 망설이던 것이 생각나, 재차 물었다.

"누나 아까 솔밭 아지매 집에 가면서 무슨 말해준다고 안했나?"
"동수야 우리 이 돈 우리 하자!"

"뭐라꼬! 돈을 우리가 하자꼬?"
"우리 하자."

"솔밭 아지매한테서 돈 받았다 아이가?"
"옴마 한테 돈 안 받았다고 하면 된다."

"그래도 2천원이다. 솔밭 아지매가 옴마한데 돈 주었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노?"
"걱정 마라, 다 계획이 있다."

누나는 솔밭 아주머니가 갑자기 집안에 돈 쓸 일이 있어 오늘 줄 수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솔밭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돈을 잘 받았는지 확인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건지 궁금했다.

"누나 만약 솔밭 아지매가 옴마한테 돈 잘 받았는지 물으면 어떻게 할끼고?"
"니는 머리 좀 써라. 고마 잃어버렸다고 하면 된다 아이가? 니가 옴마한데 말 잘하면 옴마다 믿을 수밖에 없다. 안 그렀나!"
"응 맞다. 내가 옴마한테 말하모 된다."

2천원을 받았으면서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고, 솔밭 아주머니가 돈 잘 받았는지 어머니께 물을 때는 잃어버렸다고 하면 된다는 누나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왜 심부름을 나와 함께 같이 가겠다고 했는지가 밝혀진 것이다. 만약 모든 일이 다 들통나도 생명 같은 존재인 나와 함께 공모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누나 2천원가지고 머 할끼고?"
"과자 사먹으면 된다 아이가. 2천원이면 오래 살 먹을끼다."

"누나 내도 많이 주라 알 것나?"
"하모 같이 먹어야재. 니 누구 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알 것나? 만약 옴마가 알면 내는 죽는다."

"누나 뿐만 아니라 내도 혼 날끼다."
"몰라 옴마가 니를 때리겄나. 들통 나면 나만 대나무 가지로 엄청 맞을끼다."


솔밭 아주머니가 갑자기 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는 우리의 말을 어머니는 의외로 쉽게 믿으셨다. 솔밭 아주머니도 어머니께 돈을 잘 받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와 공모한 2천원 거짓말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들통 나고 말았다.

누나와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먹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시골 아이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매일 과자를 사먹겠는가?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어머니께 누나와 내가 매일 과자를 사먹는데 어디서 돈이 났는지 물은 것이다.

돈을 준 일이 없는 어머니는 2천원 생각이 나서 솔밭 아주머니께 물었고, 아주머니는 누나와 나에게 돈을 보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순아! 동수야 니들 빨리 이 와 바라."

어머니 손에는 마른 대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다. 대나무 가지는 누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맞으면 몸에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 것을 알고 있는 누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옴마 와 예?"
"옴마, 옴마라꼬 하지 마라. 돈 내 놔라."

"무신 돈 말입니꺼?"
"무신 돈 몰라서 묻나? 솔밭 아지매가 준 돈 말이다."

"솔밭 아지매가 다음에 오라꼬 했다 아이밉니꺼."
"내 다 알고 왔다. 솔밭 아지매가 2천원 줬다고 했다. 구멍가게 아지매가 만날 과자 사먹었다고 했다. 그 돈이 어디 갔고, 무신 돈이 있어서 과자 사먹었노?"

어머니는 마른 대나무 가지로 한 없이 누나를 때렸다. 누나는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동생에게 무신 거짓말을 시키노. 2천원 돈이 아 이름이가."
"옴마 잘못했습니더. 잘못했습니더."

"동수 니도 이리 오라 내가 니를 어떻게 키웠노. 이 놈아 옴마가 니를 우찌 키웠는데 거짓말을 하노."

내가 다니는 길에 있는 돌부리까지 찾아 뽑아내신 어머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바로 '너'라고 말씀하신 어머니께서 내가 한 거짓말에 정신을 거의 놓으셨다. 내리치는 대나무 가지는 살점을 뜯어내는 아픔이었다.

"내가 이 집에 시집와서 우찌 살았는지 알 것나. 내는 거짓말 하는 거는 참지 못한다. 2천원이 아까바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수 니가 거짓말을 한기다. 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이리 쉽게 거짓말을 하모 나중에 커서 어떻게 할끼고."
"옴마 다시는 거짓말 안 하겠습니더. 용서 해주소."

"그래 동수야 니 단디 생각해라. 돈 때문에 거짓말 하지 마라. 돈 가지고 거짓말 하면 니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죄 없는 다른 이가 죽는다 알 것나."

그 날 어머니와 누나, 나는 한 없이 울었다. 이후에도 거짓말을 했지만 '돈'과 연관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돈 가지고는 거짓말 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누나가 이 사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30년 전 2천원 거짓말 사건은 내 가슴에 자리잡고 있다. 그 때 2천원이 지금 화폐 가치로 따지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이들에게 '돈' 가지고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어머니 가르침을 이야기해준다.

돈 가지고 거짓말하면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어머니 말씀이 틀리지 않았음은 우리 시대가 보여주고 있다. 30년 전 작은 가르침을 주신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응모글.



태그:#거짓말, #어머니,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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