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시작했기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 같다. 앞사람을 따라잡기에도 너무나 버거웠던 세월, 뒤를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숨가쁘게 17년을 달려오고도 여전히 따라가야 할 길이 멀다고 끈을 조여 매는 LG 트윈스의 노장 내야수 이종열(35).

사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리는 선수들은 너무도 많이 있었다. 그래도 따라 잡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것이 이종열의 17년을 버티게 해준 유일한 경쟁력이었다.

1991년 데뷔한 '단추' 이종열의 암담한 출발

 이종열은 LG에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다.

이종열은 LG에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다. ⓒ LG 트윈스


이종열의 별명은 '단추'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단지 그의 눈이 단추같이 작다고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야구선수라면 '바람의 아들'이나 '무등산 폭격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와 관련된 멋진 별명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지만 놀랍게도 17년을 뛰었음에도 이종열의 별명은 여전히 단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를 더 이상 단추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뿐.

내야수였던 이종열은 1991년 장충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을 했다. 당시 받은 계약금은 900만원, 연봉도 900만원이었다. 김재박, 이광은이라는 불세출의 내야수를 보유하고 있었던 LG는 이종열에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그해 이종열과 함께 입단을 했던 동기 중에는 국가대표 내야수 출신의 슈퍼스타 송구홍도 있었다. 출발부터 암담했던 것이다.

입단 시 눈에 띄는 것 하나 없어 보였던 이종열이었지만 수비 하나는 정말 잘해냈다. 아무데나 갖다놔도 척척 임무를 수행해내는 이종열은 당시 LG의 감독이었던 백인천 감독의 눈에 들게 되어 감격스럽게도 입단한 첫 해 1군에 올라올 수 있었다. 비록 주전 내야수들의 체력을 보호해주기 위해 경기 후반, 특히 지는 경기에 대수비로 출장을 했지만 1991년 4월 25일 빙그레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정식으로 데뷔전을 치른 것을 비롯해 그해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며 24경기에 출장을 했다.

안타 5개에 타율 .238. 이종열의 데뷔 첫해 성적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래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1군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2년차 시즌이었던 1992년에는 54경기, 1993년에는 송구홍의 공백으로 인해 90경기에 출장을 하는 등 서서히 백업 내야수로 자리를 잡아갔지만 타율은 2할 대 초반에서 도통 올라가지를 못했다.

1994년, 그해 시범경기에서 수비 도중 타구에 얼굴을 맞고 앞니 4개가 부러지는 큰 중상을 당했던 이종열은 단기간에 극복하기 불가능하다는 타구 공포증을 이겨내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설 만큼 주전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였지만 타율은 .211로 여전히 나아지지를 않았다.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위치히터로 변신을 하기도 했지만 타력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렇게 공·수의 극심한 엇박자 속에 이종열은 8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17년간의 추격, 결국은 모두 따라잡았다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하는 이종열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하는 이종열 ⓒ LG 트윈스


수비는 잘했지만 항상 타격이 아쉬웠던 이종열은 1999년 128경기에 출장을 하면서 타율 .291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든다. 136개의 안타를 기록했으며 홈런도 9개나 때려냈다. 믿지 못할 만큼 완벽한 변신. 힘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근육을 보완한 것이 드디어 효과를 본 것이었다.

프로 9년만에 이종열은 당당히 주전으로 올라섰다. 물론, 이후 이종열이 완벽하게 주전 내야수로 뛰었던 시즌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번에 이종열을 괴롭힌 것은 타력이 아니라 부상이었다. 이종열은 2001년부터 근 3년 동안 끈임 없이 부상과 싸워야 했다.

부상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2004년부터는 지속적으로 영입되는 신인 내야수들과의 경쟁을 벌여야 했다. 한때 세대교체를 부르짖는 LG에 30줄을 훌쩍 넘겨 버린 이종열은 세대교체의 반대 이름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려 15년을 넘게 한결 같이 내야의 빈 곳을 지켜왔던 이종열이 없는 LG를 상상하기란 왠지 어색했다.

눈이 작아서 생긴 단추라는 별명도 왠지 구멍을 메워주는 단추를 의미하는 것 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이종열은 구석구석 빈자리를 채워줬다. 입단할 때부터 그랬다. 빈자리 생기면 당장 달려와 씩씩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던 이종열, 주전으로 뛴 시간보다 그렇게 구멍을 메우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남들처럼 큰 주목도 한 번 끌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세월을 이종열은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뛰어왔다.

그렇게 달려온 지 17년이 된 2007년, 이종열은 121경기에 나서 생애에서 두 번째로 많은 111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타율 .285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35살,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시즌을 보낸 것이다. 내년이 되면 이종열은 LG에서만 18번째 시즌을 맞게 된다. LG에서 이종열보다 더 오랫동안 뛴 선수는 이제 아무도 없다. 시작할 때 이종열은 한참이나 뒤에서 출발을 했지만 결국은 모두를 따라잡은 것이다.

통산 1561경기. 프로야구를 통틀어 이종열보다 더 많은 게임을 뛴 선수도 불과 9명뿐이다. 오래 달리는 것. 포기하지 않고 오래 달리는 것이 LG 트윈스의 노장 내야수 이종열이 선택한 길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앞에서 달릴 수 있으리라'는 우직한 믿음 하나에 의지해 달려온 길. 그렇게 17년을 달려온 이종열.

이제는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으니 이종열의 믿음이 옳았던 것이다. 그라고 왜 남들처럼 빨리 달리고 싶지 않았을까. 그 모진 세월을 가슴 속에 품고 여기까지 달려온 이종열에게 그리고 또 앞을 향해 달려갈 이종열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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