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닥치고 있다. 사실 이맘 때면 항상 벌어지는 것이 프로야구단의 선수 방출이나 감독 교체와 같은 구조조정이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심상치가 않다.

현재까지 재계약을 하지 못한 6개 구단의 감독과 코치가 11명, 방출된 선수만 무려 67명에 이른다. 군 입대로 일시적으로 방출된 선수들을 고려하더라도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단들이 여전히 추가 방출을 계획하고 있고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두산과 SK가 남아있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끝내 방출된 김승관

 지난 19일 소속팀 롯데에서 방출된 '2군 홈런왕' 김승관

지난 19일 소속팀 롯데에서 방출된 '2군 홈런왕' 김승관 ⓒ 롯데 자이언츠


하루 아침에 소속팀을 잃어버린 선수들은 겨울 동안 자신을 원하는 구단을 찾지 못한다면 프로야구판을 떠나야만 한다.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프로란 원래 그런 곳이 아니었던가.

필요에 의해 선택받고 또 그래서 버림받는 곳이 프로다. 프로에서 버텨내기란 이렇게 힘들다. 대신 살아남는다면 그만큼의 대우를 받는 곳이 또 프로의 매력이리라.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낙오된 많은 선수들 가운데 유난히도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롯데에서 방출된 내야수 김승관(31)이다.

프로 13년 동안 통산 타율이 .214에 때려낸 안타가 고작 75개에 불과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성적을 낸 그저 그런 선수 김승관이 뭐가 특별해서 눈에 들어오느냐고 반문을 하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한때 그가 프로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였으며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동기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쌍벽을 이루던 야구 천재였다는 사실 정도다. 프로에서 유망주에 천재 소리 한 번 안 들어본 선수가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구차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더라도 김승관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과거에 그가 이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야구 천재였다는 사실뿐이다.

프로 13년 동안 안타를 1개도 때려내지 못한 시즌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여섯 시즌이고 통산 홈런 3개만을 기록한 채 은퇴의 기로에 놓여있는 김승관. 그의 야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13년 전으로 시계의 바늘을 되돌려야 한다.

김승관의 멈춰버린 13년

 2군 홈런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김승관이 13년 동안 1군에서 때려낸 홈런은 고작 3개뿐이다.

2군 홈런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김승관이 13년 동안 1군에서 때려낸 홈런은 고작 3개뿐이다. ⓒ 롯데 자이언츠

김승관은 대구상고(현 상원고)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 라이온즈와 9500만 원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고 프로에 입단을 했다.

대졸 선수만을 대상으로 신인 드래프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졸 선수 자체가 드물었던 당시에 대졸 1차 지명과 맞먹는 9500만 원의 금액은 상당한 거액이었다.

1994년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G에 입단을 했던 아마야구 스타 김재현의 계약금이 9100만 원이었으니 당시 김승관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승관은 대구상고 2학년 시절이던 1993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홈런왕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치며 모교 대구상고에 1973년 이후 무려 20년 만에 우승을 안기는 등 일찌감치 야구천재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김승관은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최우수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삼성이 선택한 야구천재는 김승관만이 아니었다. 바로 김승관과 고교시절 쌍벽을 이뤘던 경북고의 이승엽 역시 같은 해 계약을 맺고 프로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투수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승엽의 계약금은 김승관보다 많은 1억3천2백만 원이었지만 두 야구 천재에게 거는 기대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분명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이승엽이 입단 후 투수가 아닌 타자로 전향을 하면서 김승관의 프로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승엽과 1루수로 포지션이 겹치는 김승관은 반드시 이승엽을 넘어서야 했지만 이미 심상치 않은 적응력을 보이던 이승엽에게 밀려 2군으로 밀려나야 했다. 2군으로 밀려났지만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김승관은 분명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기회는 분명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김승관이 2군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서서히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쯤 이승엽이 프로야구의 홈런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이승엽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 돼버린 것이다. 기다리던 기회는 끝내 찾아오지 않았고 김승관은 결국 대부분의 세월을 2군에서 보내야했다. 가끔 1군에 올라오긴 했지만 어쩌다 한 번 주어지는 기회는 차라리 고문이었다. 매번 시험을 치르는 불안한 심정으로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던 김승관이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기란 어려웠다.

그렇게 2군을 전전하는 사이 2004년이 됐다. 어느덧 세월은 9년이나 흘렀다. 그 사이 이승엽은 무려 32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아시아의 홈런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2년간 55억 원 이라는 엄청난 거액을 받고 일본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한때 이승엽과 견줄만한 유망주였던 김승관은 '2군 홈런왕'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2군에서는 꽤나 무서운 장타력을 보여주었지만 1군에서는 9시즌 동안 단 한 개의 홈런도 때려내지 못한 채 연봉 2200만 원을 받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을 했다.

김승관은 공교롭게도 이승엽이 떠난 2004년 입단 10년 만에 프로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김승관은 2004년 시즌 중반 롯데로 트레이드 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꿨지만 2군에서 펄펄 날다가도 1군만 올라오면 방망이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은 삼성 시절이나 롯데 시절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승관은 두 번째 팀 롯데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난 19일 끝내 방출 대상자가 돼 롯데를 떠나야 했다. '2군 홈런왕' 김승관은 올 시즌에도 2군에서 롯데의 4번 타자로 12개의 홈런을 기록해 남부리그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렇게 김승관의 13년은 멈춰버렸다.

'대기 만성 야구선수'가 되기를 

김승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선수'라고 부른다. 어쩌면 김승관은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승엽이라는 시대의 영웅과 동시대에 한 팀에서 같은 포지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비운을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보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비운이 됐건 아니면 정말 남들보다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됐건 김승관을 절대로 비운의 선수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여전히 희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김승관의 야구를 그렇게 결정지어서는 안 될것 같다.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김승관의 야구도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이다.비운의 선수라고 단정짓기에는 이제 31살의 김승관은 너무도 젊다. 올해도 2군에서 12개나 홈런을 때려내지 않았던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김승관에게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비록 13년째 멈춰버렸지만 김승관이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후에 누군가 야구선수 김승관에 대해 물어본다면 '비운의 야구천재 김승관'이 아니라 뒤늦게나마 야구를 깨닫고 활짝 날개를 편 '대기 만성 야구 선수 김승관'이라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그런 선수로 기억 되기를 바란다.

이대로 멈춰버리기에는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김승관이 높이 아주 높이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관 방출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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