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25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던 신인선수는 누구일까? 열에 아홉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MVP를 싹쓸이한 '괴물' 류현진을 떠올리겠지만 류현진 이외에도 입단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던 신인들은 꽤나 많이 있었다.

신인 최다승인 19승을 거둔 1989년의 박정현(당시 태평양)이나 1986년 18승을 거둔 김건우(당시 MBC)가 그랬고 데뷔 첫 해 타율 .341 23홈런 90타점을 기록했던 1993년의 양준혁(삼성)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신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1996년 등장한 이 선수를 빼고는 프로야구의 신인 역사를 논할 수 없다. 이 글은 1996년 한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신인의 당돌함을 뛰어 넘어 경이적인 위압감을 주었던 타자 박재홍의 1996년 이야기다.

순탄치 않았던 박재홍의 프로 입단

▲ 박재홍은 프로야구 25년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신인타자였다.
ⓒ SK 와이번스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시리즈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SK 와이번즈의 중심 타자 박재홍(34)은 프로야구 최초로 '1차 지명권 양도'를 통해 팀을 옮겨 입단을 한 선수다.

이전까지 전례가 없었던 1차 지명권 양도를 통해 입단을 했다는 것은 박재홍의 프로 입단이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일고 3학년이었던 1991년, 투수 겸 4번 타자로 맹활약을 하며 모교를 전국 대회 결승에 무려 세 차례나 올려놓았던 박재홍은 연고지 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1992년 신인 1차 지명을 받았던 선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입단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박재홍은 '야구 명문' 연세대학교로 진학을 했다. 박재홍은 졸업을 하더라도 프로에 입단을 하려면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던 해태로 입단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연세대로 진학을 한 뒤 박재홍은 투수에서 타자로 완전히 전향을 하고 타격에만 몰두를 하게 된다. 95년 '대학 춘계 리그'에서 도루와 타점왕을 차지하며 최우수선수에 오르는 등 호타준족의 강타자로 성장한 박재홍은 돌연 아마야구팀 현대 피닉스에 입단을 해버렸다. 해태에게는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된 것.

프로로 들어온다면 무조건 해태에 입단을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아마추어 팀에 입단을 하는 것은 제지할 방도가 없었다. 1994년 창단한 현대 피닉스는 당시 모기업의 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아마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며 프로야구팀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는 상태였다.

박재홍은 현대 피닉스로 부터 무려 4억3천만 원이라는 계약금을 받았는데 4억3천만 원은 당시 프로야구 신인 타자 역대 최고의 금액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해태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던 것이다. 박재홍은 당시 인터뷰에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국가대표로 뛰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며 현대 피닉스와 계약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박재홍을 아마에 빼앗길 수만은 없었던 해태는 박재홍의 영입을 위해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했다. 이즈음 또 다른 프로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박재홍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고 어차피 4억 3천만 원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해태가 10승 투수 최상덕을 현대로부터 받는 조건으로 현대에 박재홍의 지명권을 넘기는 데 합의를 해 아마 잔류로 굳어졌던 박재홍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을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박재홍의 프로 입단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프로야구에 영원히 남을 박재홍의 1996년

▲ 프로야구 최초의'300홈런-300도루'에 도전하고 있는 SK의 박재홍
ⓒ SK 와이번스
비록 입단 과정에서 잡음으로 연고팀인 광주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지만 박재홍은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프로야구에 '괴물 신드롬'을 몰고 왔다.

고교시절 투수까지 했을 만큼 강견이었고 도루왕을 차지했을 만큼 발도 빨랐다. 게다가 무시할 수 없는 장타력까지 보유했던 박재홍은 시즌 개막과 함께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돈 때문에 프랜차이즈 선수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 마당에 박재홍이 프로야구 판을 휘젓고 다닐 만큼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었으니 해태 팬들의 상실감이 더욱 커졌다. 급기야 박재홍은 5월 10일 첫 번째 광주원정 경기에서 성난 관중들이 던진 캔에 머리를 맞고 찰과상을 당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박재홍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쌍방울의 감독이었던 김성근(SK감독)감독이 박재홍의 타격 자세에 문제점을 지적하며 '부정타격'의혹을 제기, 결국 박재홍은 타격 자세를 오픈 스탠스로 바꿔야 했다.

현재 김성근 감독과 박재홍이 같은 팀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났다는 것도 묘한 인연인 셈이다. 김성근 감독은 박재홍에게 "너는 당시 비범한 선수였다. 그때 일은 내가 잘못했다"며 당시 일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당시 박재홍은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타자였다. 이런 주위의 견제들은 박재홍을 시즌 중반에 연속 무안타에 허덕이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뜨리기도 했다.

1996년 9월 3일은 프로야구 역사에 잊혀질 수 없는 날이다. 박재홍은 그해 9월 3일 LG의 투수 김용수를 상대로 3점 홈런을 때려내며 30홈런-30도루라는 전인미답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당시 프로야구에 20홈런-20도루를 기록한 타자들은 드물게 있었지만 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타자는 박재홍이 처음이었다. 박재홍은 신인 최초가 아니라 프로야구 최초로 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타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박재홍은 1996년 126경기에 출장을 해 142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타율 .295, 홈런 30개, 108 타점, 36도루를 기록해 타율 9위, 최다안타 5위, 홈런 1위, 타점 1위, 도루 4위에 올랐다.

당시 30홈런을 넘은 선수도 100타점을 넘은 선수도 박재홍이 유일했다. 박재홍은 신인왕은 물론이거니와 유력한 MVP후보였지만 결국 MVP는 다승과 구원 부문을 동시에 석권한 구대성(한화)에게 돌아갔다.

박재홍은 98년과 2000년 30홈런-30도루를 두 차례 더 달성하는 등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호타준족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때 '프로야구에서 이런 신인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 박재홍이었지만 세월의 무게 앞에 괴물 신인의 파괴력도 많이 약해져 버렸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가 돼버린 박재홍은 더 이상 예전같이 무서운 타격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가끔 타석에 들어서서 매섭게 투수를 노려보는 박재홍을 바라보면 1996년 그 어느 날 프로야구를 흔들어 놓았던 '괴물 신인' 박재홍이 겹치기도 한다. 1996년 박재홍은 얼마나 무서운 타자였던가.

통산 252개의 홈런과 241개의 도루를 기록해 프로야구 최초의 300홈런-300도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박재홍의 소중한 도전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는 천리안 클럽 '아마야구사랑'운영자 최형석님이 쓰신 '현대 피닉스의 추억' 본문 중 일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2007-08-26 16:31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는 천리안 클럽 '아마야구사랑'운영자 최형석님이 쓰신 '현대 피닉스의 추억' 본문 중 일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박재홍 현대 피닉스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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