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 이형종은 뛰어난 야구재능을 가진 유망한 투수다.
ⓒ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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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투수놀음이다. 고교야구의 결승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4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이하 대통령배) 결승전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15년만의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김수완(18·제주관광산업고)이 이름을 널리 알렸다. 5년 만에 대통령배에서 우승해 야구명문임을 강조한 광주일고의 선전도 눈부셨다. 하지만 대회가 완전히 끝난 지금은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마운드에 주저앉은 이형종(18·서울고)을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고교야구 에이스의 숙명

지난 3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9회말 2아웃을 잡아낸 이형종은 승자의 영광을 불과 한 발자국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 때문인지 승리는 이형종을 비롯한 서울고의 몫이 되지 못했다. 9-8로 앞서있던 서울고는 이형종이 몸에 맞는 볼과 안타를 연달아 허용하면서 순식간에 9-10으로 역전당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었다.

광주일고 윤여운의 끝내기 안타는 울먹거리면서 투구하던 이형종을 아예 마운드에 주저앉게 했다. 체격은 성인 못지않은 이형종이지만 아직 마음은 여린 고등학생이었다.

서울고는 이형종 외에도 2학년 안성무를 등판시키며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에이스 이형종이 필요했다. 하지만 연투와 왼쪽 골반뼈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을 선보일 수 없던 이형종은 결국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고교야구에서 에이스 투수는 '고독한 존재'다. 토너먼트로 빡빡한 일정 속에 치러지는 고교야구대회의 특성상 기량이 좋은 투수는 계속 등판해야 한다. 서울고 에이스인 이형종도 별 수 없이 그래야 했다.

동료들이 벌려놓은 점수를 지키지 못한 이형종의 마음은 몸이 아픈 것 이상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운드를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형종은 팀과 그 운명을 같이했다. 이형종은 최후의 순간까지 철저한 에이스였다.

이형종, 어떤 투수인가?

이형종은 중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다. 양천중 소속이던 2004년, 제51회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노히트노런을 작성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화려한 경력이 있다. 이를테면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셈.

이런 이형종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고교무대에서도 각광받는 투수로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1년 선배인 임태훈(19·두산 베어스), 이병용(19·삼성 라이온즈)과 같은 수준급 투수들 속에서 이형종의 가치도 빛나기 시작했다. 단단한 마운드 때문에 서울고는 우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다.

하지만 지난해의 서울고는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순간적인 집중력 결여와 세밀한 야구에 약점을 보이며 자멸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 가운데 임태훈과 이병용 등 수준급 투수들이 졸업하자 올해 서울고는 전력이 약해졌다. 타력과 수비력이 안정감을 찾으면서 새로운 에이스인 이형종이 제 몫을 해내는지가 관건이었다.

물론 그 우려는 대통령배를 거치면서 시원하게 걷혔다. 이형종은 마운드에서 실력으로 자신이 에이스임을 증명했다. 대통령배 준우승은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성과임이 틀림없었다.

비록 결승전에서 부진했지만 이형종은 뛰어난 투수이자 야수다. 수려한 외모, 185cm의 키에 80kg의 몸무게로 야구선수로는 이상적인 체형을 타고났다. 투수로서는 올해 최대어로 평가받기도 하는데 우완정통파로 시속 145km를 상회하는 양질의 직구를 구사하며 슬라이더의 위력이 뛰어나다. 타선에서 4번을 칠만큼 탁월한 타격재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단점을 지적하자면 현란한 투구폼을 들 수 있다. 이는 제구력 난조로 경기 운영에 가끔씩 애를 먹는 이유 중 하나다. 프로에 진출해 좀 더 간결한 투구폼으로 개선한다면 고질적인 문제인 제구력 불안을 해소하며 더욱 뛰어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다만 야구선수로서 마음을 단단히 먹을 필요가 있다.

이번 대통령배는 이형종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그 추억이 유쾌한 추억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는 '이형종'이라는 이름 석자를 잊지 못하도록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형종 자신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패배의 교훈을 얻었다. 최선을 다한 결과이므로 받아들여야 하고 좀 더 뛰어난 투수가 되기 위한 밑거름인 그 교훈 말이다.

야구선수 이형종의 도전은 결승전 패배로 무릎을 꿇고 좌절하던 순간부터 이미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이형종에게는 뼈아플 법도 한 '결승의 추억'이 그리 씁쓸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prealist
대통령배 서울고 결승전 이형종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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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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