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킴'(김아선 분)이 자신을 괴롭히는 약혼자 '투이'(하지원 분)를 살해한 후 절규하는 장면.
ⓒ KCMI, Inc.
지난 5일, 세계 4대 뮤지컬 중 마지막으로 한국 무대에서 초연되는 <미스 사이공>을 보기 위해 찾은 성남아트센터. 성남의 '예술의 전당'이라고 해도 될 만큼,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줄기와 호젓한 주변 풍경이 일품이었다. '4대 뮤지컬'로는 <미스 사이공>과 함께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캣츠>가 꼽힌다.

<미스 사이공>은 한국에서 초연된다는 점뿐 아니라 5개월여에 걸친 혹독한 오디션을 거쳐 신인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화제를 모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실로 컸다. 베트남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뮤지컬인지라, 어떤 방식으로 실감나게 극을 이끌지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작품의 사실성은 엉뚱한 데서 더 빛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 당시 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술집에서 미군 병사들이 창녀들을 애무하는 장면이나 댄서들이 티 팬티를 입은 채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장면은 너무도 사실적이다.

▲ 베트남 여인 '킴'과 미군 '크리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 이들의 실감나는 키스신을 자주 볼 수 있다.
ⓒ KCMI, Inc.
사실적이다 못해 질펀하게 즐기는 상황을 묘사한 배우들의 연기에서 지독히 선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남성 관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선사한 것일까. 내 앞자리에 앉은 어떤 남성은 쉬는 시간에 오페라글라스를 빌려다 반라에 가까운 여배우들의 몸매를 실컷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전쟁이라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맺어진 애틋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이런 감동은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별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대작 뮤지컬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선사된 보너스인 셈.

뮤지컬 마니아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헬리콥터 장면은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실감나게 만들어졌다. 특히 미군 병사들이 헬리콥터에 오르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잠시나마 '진짜 헬리콥터가 무대 위에 등장한 건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 명장면으로 꼽히는 헬리콥터 탈출 장면.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순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 KCMI, Inc.
관객을 압도한 헬리콥터 장면과 탁월한 조연들

프리뷰공연을 접한 뮤지컬 마니아들이 각자의 동호회에서 지적한 <미스 사이공>의 문제점은 주인공인 '크리스'역의 마이클 리의 발음 문제, 음향이 불완전하다는 점 등 크게 두 가지였다.

실제 공연을 보니 마이클 리의 발음은 약간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극의 흐름을 깨뜨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음향 문제와 관련, 앞자리에서는 대사나 노래를 듣는 데 불편함이 없었으나 뒷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이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전 상황을 잘 묘사했으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적나라하게 그렸다. 여기에는 출연배우들의 열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인공 '킴'역을 맡은 김보경은 맑은 것 같으면서도 걸쭉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으로 비극적인 베트남 여인의 인생을 잘 소화했다.

'크리스'와 그의 친구 '존', '킴'과 '엘렌'의 연기와 가창력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면 뮤지컬을 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될 것 같다. '아이다'에서 라다메스 장군으로 열연하며 선 굵은 연기로 주목받았던 이건명(극중 '존')과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역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김선영의 활약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 베트콩 군사들의 제식 장면. <명성황후>에서 일본 군인들이 결의를 다지는 모습과 분위기가 너무 흡사하다.
ⓒ KCMI, Inc.
멋진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동호회 사이트 등에서 "주인공보다 더 낫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들과 엔지니어로 출연해 감초 역할을 하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류창우. 이 세 명의 배우는 주연 같은 조연으로 <미스 사이공>을 더욱 빛냈다. 특히 김선영의 가창력은 "역시 김선영이야!"라는 객석의 찬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미스 사이공>이 대작 뮤지컬다운 이유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된다. 상황에 맞게 무대 세트를 적절히 변화시키는 점이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품을 감상한 후 성남아트센터를 나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우리 창작 뮤지컬이 그만큼 성과를 많이 거뒀기 때문일까. '뮤지컬 빅4'라는 기대를 만족시키기엔 확실히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8월 20일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이후 9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어집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