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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언니는 친정 어머니에게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큰딸이었다. 사촌 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머니는 '중환자실 면회가 안 돼도 내가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병원으로 가는 우리들을 따라나서셨다.

언니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눈 한 번 뜨지 못한 채, 쓰러진 지 팔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흔 아홉 언니 뒤에는 몸이 아픈 남편과 스물 셋, 스물 한 살 두 아들만 남았다. 지난 2월 초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영안실에도, 장지(葬地)에도 걸음을 하지 않으셨다. 고인이 손아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너무 젊은 나이에 떠난 조카의 죽음이 애통해 도저히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내게 눈물 섞어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평생 불쌍하게 살았으니 편안하게 묻히기라도 해야지'하시며 오래 전에 어머니가 준비해 두었던 장지를 언니 앞으로 내놓으셨다. 마침 어머니는 아들이 교회 묘지를 구입한 것이 있어 장지 걱정은 없으신 터였다. 그래서 언니는 먼저 세상 떠난 친정 어머니(내게는 이모) 앞자리에 누웠다.

ⓒ 청림출판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에 파묻혀 버린다 해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늘 우리를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인간은 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오진탁 교수는 '죽음이 바로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정리하면서 책〈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며, 삶이 있음으로 죽음이 그리고 죽음이 있음으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죽음 이후와 죽음을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과연 삶의 태도를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안락사 문제를 다루면서 죽음 준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제1장을 시작해 죽어 가는 사람의 여섯 가지 반응과 호스피스에 대해 이야기를 넓혀 나가고, 또한 낙태와 자살, 사형제도, 에이즈 등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을 빼놓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간다.

마지막으로는 죽음을 모든 것의 끝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믿을 것인가를 우리에게 질문하며, 죽음이 끝이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들이대면서 죽음은 인간 성장의 마지막 단계임을 역설하며 마무리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제5장 '자살은 사회적 살인이다' 부분이다. 여러 유형의 자살 사례를 분석하며 저자는 자살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한편으로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코 자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대로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은 바르게 사는 법을 생각하게 되므로' 자살을 생각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준비교육이야말로 자살 예방교육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죽음준비교육은 지금 당장 죽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또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한 부분은 제1장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다. 온갖 기계의 도움으로 가녀린 목숨을 이어나가던 언니의 병실 밖에서 인간다운 죽음은 과연 무엇이며, 단순한 생명 연장은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고민하던 뒤라서 그랬을 것이다.

물론 언니는 그리 길지 않게 병상을 지키다가 떠났지만, 주위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의 오랜 연명치료를 두고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한 생명에 대한 문제이므로 의료진과 가족 그 누구도 결정하기 어렵고 또 그 누구도 온전히 책임질 수 없기에 참으로 혼란스럽다.

그러니 죽음 준비야말로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당사자인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며, 죽음 뒤에 남게 되는 가족들의 혼란을 막아주는 더할 수 없는 선물일 것이다.

죽음 준비에 '리빙 윌(Living Will)'이란 것이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리빙 윌'이란 '생전 유서' 혹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을 권리를,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선언하고 서명해 두는 것'을 말한다.

혹시라도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에 대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치료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고, 아울러 이에 따르는 모든 행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는 선언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선언서의 내용은 세계적으로 거의 같은 내용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리빙 윌'을 설명해 드렸고, 두 분께서는 며칠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서명을 하셨다. 그러면서 아무리 살만큼 살았다해도 연명치료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자식들이 서운하고 괜히 죄스러울 것이므로, 연명치료를 하긴 하되 '몇 개월 이상'이 아니라 '일주일'만 해주면 좋겠다고 밝히셨다.

당신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흔쾌히 받아들여 결단을 하신 부모님의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래 품고 있던 생각을 밖으로 꺼내 제대로 실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보면, 책과 사람의 인연 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은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많이 인용하고 사례 중심으로 써나가서 누구나 읽기 쉽도록 쓰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살아났지만, 생사학(生死學)을 연구하는 철학 교수 특유의 깊이라든가 향기가 글 사이에서 배어 나오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다음 책에서는 그 일을 해 주었으면 참 좋겠다.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 / 오진탁 지음 / 청림출판, 2004)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

오진탁 지음, 청림출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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