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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어머니는 가끔 언니와 나를 데리고 앉아 아버지와 관련된 이런 저런 말씀들을 해주곤 하셨는데, 언니와 내가 꼭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이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신 직후, 앞으로 살면서 당신에게 딱 두 가지 부탁이 있다고 하시면서 진지한 얼굴과 음성으로 "제발 돈 벌어 오라는 얘기하고 아이 보라는 얘기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단다.

'세상에, 돈도 못 벌고 아이 봐주는 것도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버지께서 이 두 가지를 평생 지키셨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신문사에서 정년퇴직하시기까지 월급 외에는 모르셨고, 삼남매는 물론 손자녀들까지도 가까이하기 어렵게 만드셨던 무뚝뚝한 모습과 함경도 사투리의 강한 말투를 버리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케니 켐프의 '목수 아버지'는 부품만 다 준비된다면 새 자동차는 물론 원자폭탄도 만들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버지이다. 그러나 약한 시력, 틈이 벌어진 치아, 한 쪽 귀가 들리지 않아 평생을 이명(耳鳴)에 시달린 종합병원 약사였다.

나쁜 시력과 청력으로 인해 직장 동료들로부터도 소외되지만 일곱 명의 자녀들을 기르기 위해 참아내며, 자신이 겪는 인생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차고 안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묵묵히 넘긴다.

'목수 아버지'는 쓰고 남은, 혹은 버려진 것들을 사용해 아이들을 위한 소형 자동차에서부터 배낭, 샹들리에, 이층 침대, 수납장 등등을 모두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목수 아버지'는 어떤 반항이나 말대꾸도 용서하지 않았다. 따라서 늘 아버지의 신중하고 엄한 눈초리를 받으며 자란 주인공은 아버지의 육중한 체격과 무언의 꾸지람이 두려워 말대꾸 한 번 한 적 없이 자란다.

부자(父子) 갈등의 십대 시절을 넘어, 책은 병원에서 은퇴한 아버지가 과테말라의 선교사 자리를 지원한 직후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토록 강인한 육체를 가졌던 아버지가,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손발부터 시작해 안쪽으로 서서히 마비되어가는 자신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을 옆에서 보는 아들. 결국 아버지는 고통을 넘어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나라'로 가신다.

4개월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형과 함께 어머니 댁으로 가 아버지가 40여 년간 물건들로 가득 채운 차고를 치우면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목수였음을, 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 목수였음을 깨닫는다.

다시 내 아버지 이야기. 삼남매를 겨우 제 자리 찾을 만큼 키우고 나니 79세에 22평 작은 아파트 하나가 전 재산. 월급 타오는 일은 진작에 마무리하셨고, 아이 보는 일에서도 물론 자유이시다.

내 아버지는 '목수 아버지'처럼 세상의 온갖 것을 만들어내시기는커녕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는 무딘 손으로 살아오셨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목수가 아닐까. 친절하게 기록한 인생의 청사진을 교훈으로 남겨 주지 못하신다 해도, 뛰어난 재주로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고 가지는 못하신다 해도, 내 몸을 낳게 하시고 내 몸을 기르신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목수다.

덧붙이는 글 | (목수 아버지 Dad Was a Carpenter, 케니 켐프 지음, 안의정 옮김, 인북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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