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감독 정승오-배우 공민정  영화 <이장>의 감독 정승오와 배우 공민정이 11일 오후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장' 감독 정승오-배우 공민정 영화 <이장>의 감독 정승오와 배우 공민정이 11일 오후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영화 중 상당수가 가족 이야기인 감독, 그리고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면모를 보인 배우가 한 영화로 만났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이장>은 정승오 감독의 첫 장편이면서 배우 공민정에겐 올해 첫 개봉 영화기도 하다. 

아버지 무덤의 이장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다섯 남매와 집안 어른 간 처절하면서도 웃긴 드라마. <이장>을 짧게 이 정도로 정의하기엔 많이 아쉽다. 로드 무비와 휴먼 드라마를 오가는 장르적 특징과 함께 영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의 민낯을 드러낸다. 웃고 울다가 누군가에겐 뒤통수가 싸할 것이고, 가슴 한쪽이 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개봉을 앞둔 11일 오후 삼청동 인근에서 정승오 감독과 배우 공민정을 만났다.

첫 만남, 신기했던 꿈

<이장>을 보기 전 정승오 감독의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봤다면, 영화를 보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일지도 모른다. 혜영 역의 장리우를 제외하고 배우들이 바뀌었지만 네 자매의 이름이 그대로 <이장>에 등장한다. 공민정은 이중 셋째 딸 금희 역을 맡았다. 두 언니와 두 동생, 그것도 막내 승락(곽민규)만 유일하게 아들인 가정에서 금희는 여타 셋째 딸이 그렇듯 일종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런데 금희도 마냥 물러서진 않는다. 결혼자금 500만 원을 두고 금희는 형제들과 일생일대 큰 갈등을 빚기도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는 침체 돼 있지만 개봉을 앞둔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개봉까지 기억을 곱씹어 가며 <이장>에 담긴 두 사람의 생각을 물었다.

나름 독립예술영화계에서 탄탄하게 필모를 쌓던 공민정과 정승오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며 "종종 소리 내서 대사를 뱉어보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장>을 읽고 있는 제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공민정이 첫인상을 말하자, "사실 곽민규 배우가 연결고리가 돼서 시니라오를 드렸다"며 정승오 감독이 화답했다. 
 

'이장' 정승오 감독

▲ '이장' 정승오 감독 ⓒ 이정민

 
"재밌는 일화가 있다. 시나리오를 드리기 위해 전화했는데 꿈에서 강민준(<이장>에서 첫째 혜영의 아들로 나오는 아역 배우)을 봤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장난치시는 줄 알았다." (정승오 감독)

"(웃음) 진짜다. 좀, 사짜 느낌이 나긴 하는데 제가 꿈을 잘 꾸긴 한다. 저도 민준이 출연하는 얘길 듣고 놀랐다. 뭐, 믿든지 말든지(웃음)." (공민정)


어렸을 때 각인된 제사 풍경, 그러니까 남자들만 상 앞에서 절하고 여자들은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 <이장>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에 감독의 아내, 아내 가족의 모습을 투영한 게 <이장> 속 캐릭터였다. 이중 셋째에 대해 정승오 감독은 '중간이다 보니 눈치도 빠르고 중재 역할을 잘하는 평화주의자, 하지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캐릭터'라고 주문했고, 배우는 오롯이 받았다. 본격적인 촬영 전 배우들끼리 미리 만나 밥도 먹고 친분을 쌓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이장> 속 캐릭터들이 더욱 생생하게 표현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감독님이 애초에 캐릭터와 그 관계를 잘 형성시켜주셨다. 아무래도 가족이잖나. 저마다 나름 가져가야 할 캐릭터들이 있었다. 그래서 크랭크인 전 밥도 먹고 공연도 같이 보고 했지. 그렇다고 막역지간처럼 친해지진 않게 묘한 선을 지키게 했다. 감독님의 계획 아니었나 싶다(웃음).

촬영 전 이미 우리끼린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얘길 다 나눴고, 현장에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정말 맘껏 놀았고, 때론 싸우기도 했고, 진짜 같은 감정을 나눴다. 윤리적으로 위배되지 않는다면 전 연기할 때 진짜처럼 하려 하는데 이게 사소하지만 현장 여건이 그렇게 안 될 때도 있거든. 근데 감독님은 그 환경을 만들어주셨다."(공민정)


"계획했던 건 아니다. 아홉 명의 배우가 캐스팅된 이후, 같이 연극도 봤고, 비슷한 공간에서 리허설도 해보고, 실제 촬영장 가서 1박 2일 지내보기도 했다. 그렇게 호흡을 나름 맞춘 덕에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워낙 다들 내공이 있으셔서. 제가 사실 한 게 없다(웃음)." (정승오 감독)

가족의 가능성 혹은 가족의 한계
 

'이장' 배우 공민정

▲ '이장' 배우 공민정 ⓒ 이정민


<이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아버지 무덤 이장을 위해 뭉친 자매들은 각자의 치부나 연약한 부분을 서로 건들며 다투면서도 서로를 밀쳐내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감독은 믿는 것일까. 또 다른 하난 인연이 끊기다시피 한 막내 승낙을 기어코 이장 문제에 개입시키려 한 큰아버지의 태도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체화한 우리 사회 일부 모습이기도 하다. 

"예전엔 가족 영화를 왜 계속 찍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찍다 보니,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답했는데 계속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더라. 저도 나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 단편도 꺼내서 다시 보기도 했고. 어떤 패턴이 보이더라. 해체 직전 혹은 해체 직후의 가족을 그리고 있었다. 돌아보면 저 스스로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결핍이 이런 영화의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어렸을 때 가족이 해체됐던 게 각인됐나 보더라. 그 기억을 반추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가족에 대한 호기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이장>을 하면서 궁금했던 건 가족이라는 집단이 가진 힘은 어디서 오는가였다. 전 외아들이고, 집에 가면 늘 침묵이었는데 다른 집에 가면 복작복작하더라. 서로 상처주면서도 챙기려는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헐뜯고 싸우면서 챙기는 마음의 정체는 뭘까. 그 연대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장>을 통해 좀 파헤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정승오 감독) 

"그러게. 가족... 진짜 어렵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 구성원이지 않나. 가족만 잘 파헤쳐봐도 이 사회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든 게 담긴 단위 같다. 지금도 가족은 어렵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 노력하는 것 같고.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인데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하잖나. 한편으론 굳이 (생물학적) 가족을 만들어야 할까 싶기도 하고." (공민정)


특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야기는 <이장>을 본 국내외 관객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공감 지점이다. 영화 < 82년생 김지영 >에서 가부장을 온몸으로 거부해 온 은영 역을 맡았던 공민정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사실 <이장>의 주제 의식에 공감했다"며 말을 이었다.
 

'이장' 배우 공민정

▲ '이장' 배우 공민정 ⓒ 이정민


"가부장제야말로 성적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한 관념이잖나. 여성차별은 물론이고 남성에게도 과한 책임감을 지우는 일 같다. <이장>에선 그게 승락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남성을 위한 영화이면서 여성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보면서 되게 영리하고 재밌다고 느꼈다. 충분히 공감할 얘기였고, 제가 불편하다 느끼는 지점들에 대해 시나리오가 잘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게 되게 반가웠다. 이젠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고착화되어 있는 부분도 있잖나. 우리야말로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 시점에 영화로는 좀 올드(old)할 수 있는 소재지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공민정)

"전 사실 가부장제는 남성들이 먼저 헤어져야 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35년간 가부장제 안에서 한국남성으로 살아왔는데 그 안에서 보이는 이상한 모순적 차별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곤 했다. <이장> 시나리오 자체도 그런 질문에서 나왔다. 가족 내에서 가부장제와 이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남아 있기에 영화 속 큰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누굴까 묻고 싶었다." (정승오 감독) 


<이장>에서 감독의 희망이 담긴 캐릭터가 바로 동민(강민준)이다. 할아버지의 부재에 이어 아버지의 기억 또한 동민에겐 없다. 혜영과 혜영의 형제만이 동민을 위하고 챙길 뿐이다. 자의든 타의든 3대에 걸친 가부장제와 이별한 존재가 동민인 셈.

이미 해외에서도 그 주제 의식에 공감한 모양새다. 바르샤바영화제, 파리한국영화제 등에서 관객들은 자기네 사회가 안은 문제와 같다며 감독과 배우들에게 다양한 소감을 전한 바 있다. 공민정은 프랑스 상영 때 한 관객이 프랑스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심하다고 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정승오 감독 역시 "가부장제라는 단어만 서방 나라에 없을 뿐 또다른 이름의 남성중심주의가 존재하는 걸 느꼈다"며 "우리 영화에 호응해주신 것에 기쁘면서도 그런 말에 한편으론 씁쓸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장>이 가부장제를 짚는 걸로 시작했지만 남녀 성별을 떠나 같이 공존하며 잘 사는 방법은 뭘까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에 세계 다른 곳에서 공감하는 걸 보며 세상 사람들이 함께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민정) 

<이장>을 두고 온 가족이 함께 토론해 보는 건 어떨까. 서로에 대해 분명 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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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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