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단편영화 '실'의 이나연 감독
이나연
- 대체로 공동 연출을 맡은 이나연 감독이 연기 지도를 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연기 지도(디렉팅)는 어떻게 진행됐나.
이나연: "사전에 배우들과 리허설로 관계를 형성하는 걸 중요한 작업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배우들과 한두 번 만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연기 연습은 아예 하지 않았다. 대신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서 (지도하는 방식을) 많이 훔쳤다.
비전문 배우들도 있었기에 사전 작업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배우들이 가진 용감하고 건강한 기운만 믿고 갔다. 배우들이 뭔가를 흉내 내거나 억지로 만들지 않고 편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걸 가장 중요시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 관객들이 영화 <실>을 통해서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나연: "주인공의 세계만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영화를 볼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물 각자가 다르면서도 어떻게 연결돼있는지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로는 미디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주류'가 누구인지 그 목소리가 어떤 삶을 삭제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실>에서 여성, 이주민, 노동을 키워드로 가져가면서도 그들의 삶을 소수자성 안에서만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으려 했다."
조민재: "'공간의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나온다. 네팔이나 베트남인은 창신동에서 굉장히 오래 살았던 근로자들이다. 이주민들이 정착할 곳을 찾던 와중에 창신동에 모이기 시작했고 이주민들이 만든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창신동이라고 하면 전태일을 많이 떠올리는데, 여성 노동자의 역사가 가려졌다고 생각했다. 창신동을 전태일의 도시라면서 관광하는 모습들을 많이 봤다. 물론 도시의 중요한 상징이지만 현재 사는 사람들이 가려지고 있고 이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있나를 생각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만드는 옷과 공간에 역사가 배어있다고 본다. 창신동이라는 공간의 언어와 역사를 영화에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는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창신동을 촬영하던 프랑스인이다. 공간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과 미디어는 달콤하게도 정치적인 상황과 역사들을 이렇듯 쉽게 가져온다. 프랑스인은 그래서 영화 속에서 비판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 보통 영화와 달리 감독이 두 명이다.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배분했나.
조민재: "처음에는 제가 연출을 맡았고 이나연 감독이 촬영감독이었다. 여성 스태프들로만 이뤄진 영화를 찍자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스태프가 여자였는데 리더로서 아무래도 끌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감수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나연 감독에게 연기 연출을 부탁했다. 저희가 영화에 여성 인권과 노동을 화두로 들고 와놓고 현장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왜 영화 현장에서 영화 스태프들의 인권이 낮을까, 분명 권력 문제가 들어가 있다. 촬영감독은 보통 남성들이 많이 하고 임금이 높다. 그러니 현장 내에서도 권력이 강하다. 영화과에서는 매번 비슷한 남녀 비율로 졸업을 하는데 그 여성들이 어디 갔을까. 실력이 없어서 없는 게 아니다. 여성 스태프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줘야 하고 경험을 쌓게 만들어줘야 한다. 여성 스태프만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역시나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단편영화 '실' 스틸 사진 조민재
- 두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조민재 감독은 '감독 소개'에 '이름 없는 몸의 노동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돼 있던데.
이나연: "첫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다. <실>과 마찬가지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이 될 것이다. 성폭력 생존자인 여성 창작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주 많은 여성이 나온다. 저에게는 큰 숙제 같은 이야기라서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놓기만 하고 쓰지 못했는데 하루빨리 촬영에 들어갔으면 한다."
조민재: "기본적으로 몸으로 하는 노동은 휘발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만들고 돈을 받으면 몸의 가치가 사라진다. 나는 5년째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나의 경험과 기술을 저렴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몸은 하나고 복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건설 기술자로 살아갈 텐데 내 몸의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반면 미디어를 비롯한 영상물은 끊임없이 복제가 가능하다. 복제되는 가치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지 않나."
- 지금 영화를 찍으면서 동시에 건설 기술자로 일을 하고 있다고?
조민재: "맞다. 한 번은 내가 '투잡 뛰는 영화감독'으로 JTBC 뉴스에 나왔다. (웃음) 나는 건설 현장에서 5년 정도 일했고 기공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나온 것이다. (취재기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드렸는데 '영화감독이 돈을 벌기 위해서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한다'라고 시나리오를 짰더라. 나는 건설노동자고 영화를 하고 있는데, 영화감독이고 어쩔 수 없이 일한다고 바꿔 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나 매체를 접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실 다음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영화라는 공간을 만들면 관객들이 잠깐 와서 놀다 가는 것이다. 누구든 그 공간에 들어와서 편하게 쉴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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