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스틸컷
메가박스중앙
난해함 가운데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난해한 영화다. 탑 안에 있는 세계는 어떤 이성도 통하지 않는 독특한 공간이다. 새들이 사람처럼 움직이며 말을 하고 깃털을 빼앗긴 왜가리가 사람의 형상을 한다. 바닥은 젤리처럼 움직이며 주인공을 집어삼킨다. 탑 아래 세상엔 커다란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엔 물고기가 얼마 되지 않는다. 펠리컨들은 아무 거나 삼키려고 들고, 앵무새는 국가를 건설하려 한다. 그들의 관심 너머엔 실제 세상으로 보내질 인간을 빚고 지켜내려는 이들도 있다. 이 무수히 난해한 설정이 무엇을 위함인지 명확히 짚어내긴 쉽지 않다.
그러나 이곳에 든 외부의 인간이 있고, 탑 안의 불가해한 것들은 마치 그 내면의 무의식처럼 작동하고 기능한단 점이 비교적 선명하게 다가온다. 탑 안에서 마히토의 과제는 새어머니인 나츠코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탑 바깥의 일상적 세계에서 새어머니 나츠코를 위협하는 건 본인 그 자신이다. 언니의 남편과 결합한 나츠코는 그의 아이까지 가져버렸고, 적자인 마히토로부터 저를 제대로 이해받지도 못한다. 어머니로 불리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존중만 얻을 뿐이다. 그건 그대로 거부와 같다.
제가 품은 아이를 예정보다 빨리 낳으려 탑 안의 산실에 틀어박혔단 건 반대로 말하자면 아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그녀가 든 산실을 침범해선 안 된다는 규약을 어기고서 나츠코를 끄집어내려 들어선 마히토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내 나츠코를 '어머니'라 부른다. 이는 그녀가 밴 아이를 제 동생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마히토가 비로소 저를 둘러싼 세계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를 둘러싼 감정,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제 멋대로 굴고픈 아이 같은 마음은 마침내 고개를 숙인다.
그럼에도 앵무새 군단은 오로지 산실을 침범했다는 이유만을 들어 마히토를 뒤쫓는다. 펠리컨은 무작정 마히토를 삼키려 하고, 왜가리는 곁에서 마히토를 돕는 듯하지만 언제든 배신할 준비도 되어 있다. 앵무새는 꽉 막힌 이성처럼 답답하기만 하고, 펠리컨은 이성이 결여된 채 요구만 가득한 무의식처럼 답이 없다. 신용할 수 없는 왜가리까지 곁에 두고서 마히토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츠코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제가 가진 모든 불만과 불안을 내려놓고서 솔직하게 그녀를 수용하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