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킬러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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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변신>에는 등에 칼이 꽂힌 채 눈을 뜨게 된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뱀파이어와 흡혈의 소재로 한 일종의 복수극처럼도 보이는 이 작품은 그동안 감독이 그려왔던 세계관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의 결과물을 완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7), <조제>(2020) 등의 작품을 통해 보여줬던 차분하면서도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이번 작품은 감독의 어떤 변신처럼 다가온다. 그에게도 이렇게 역동적이고 뜨거운 면모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업자들>은 <연애의 온도>(2013), <특종 : 량첸살인기>(2024)의 노덕 감독이 선보이는 오랜만의 스크린 작품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의뢰된 살인 청부가 하청의 하청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네 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풍자와 익살스러움을 모두 잃지 않은, 빛나는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놓인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압권이다.
장항준 감독은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를 통해 최근 연출했던 또 다른 작품 <오픈 더 도어>(2023)에서와 같이 서사 속에 숨겨진 비밀 하나를 동력으로 삼아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서스펜스의 힘은 그가 뛰어난 감독이라는 사실을 다시 입증이라도 하듯 탄탄한 긴장감과 강렬한 에너지를 선보인다.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이 작품에서는 분명히 한 번 길을 잃고 그의 지휘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는 영화에 대한 그의 오랜 열망이 오롯이 담긴, 그가 이뤄온 스타일리시 무비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이다. 첫인상은 서사보다 이미지와 감독 특유의 스타일에 기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 대공황기의 풍경을 담아 시대의 은유를 스크린으로 옮기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범법자와 추방자들이 모인 지하 세계 디아스포라 시티에 매일 같은 시각,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이들을 찾아온 두 킬러의 이야기로 흑백의 무성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