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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날 개봉하는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넘버링 무비 403]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24.10.28 13:24최종업데이트24.10.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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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미디어나무(주)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학교는 평가하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17살의 이주연 학생은 자신의 학창 생활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끊임없이 주어지는 평가받는 일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때.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극심한 공포로 인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도 문제 하나 풀 수 없는 정도가 돼버렸다.

학교를 갈 수도 없고, 가는 일조차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날들 사이에서 그는 1년제 기숙형 전환 학교인 꿈틀리 인생학교를 찾는다. 인천 강화군 불은면에 위치한 대안학교로 현재의 입시제도 속에서 다양한 문제를 경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는 꿈틀리 인생학교의 설립 배경과 운영 과정을 중심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작품이다.

설립자인 오연호 이사장은 경쟁 위주의 교육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승리를 쟁취한 학생들에게만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뛰어난 학생과 평범한 학생 모두가 성취를 경험하고 나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하는데, 현재의 구조 안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실패만을 경험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상태'로 아이들을 몰아넣으며 장차 성인이 돼서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02.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주요 배경이 되는 꿈틀리 인생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또 어떤 부분을 경험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하나.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더불어 아이들이 진정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는 지점이 또 하나다. 두 지점의 내용이 서로 보완적이라는 점, 다큐멘터리의 목적 자체가 대안학교의 활동을 보여주는 일 외에 어떤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로 떨어뜨릴 수 없는 내용이다.

꿈틀리 인생학교의 설립 목적과 이와 같은 대안 학교의 필요성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은 오연호 이사장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과 목적으로 1000회 이상의 강연을 이어온 바 있다.

여러 물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출발점에는 왜 우리 학생들이 충분한 고민이나 탐색 없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바로 진학해야 하고, 또 다른 선택지 없이 입시로만 내몰리느냐 하는 고민이 있다.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교육관과 현재 입시제도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라도 한 번쯤 귀를 기울여볼 만한 깊이가 있다.

그가 집중했던 것은 덴마크의 입시제도인 애프터 스콜레(Efterschole)다. 이 제도는 누구나 본인이 원할 때 학업을 중단하고 1년 동안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껏 경험한 뒤 학교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 시간은 여유를 갖고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삶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오연호 설립자가 깨닫게 된 것은 이를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사회에 나와 구성원이 될 때 비로소 그 사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공동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꿈틀리 인생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미디어나무(주)

03.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일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 하나였다. 오프닝 타이틀이 끝나고 카메라 한 대가 고요한 아침의 꿈틀리 인생학교를 비추던 짧은 신 하나. 학교의 측면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한 학생이 멀리 거치된 카메라를 향해 환하고 밝게 인사를 건넨다. 그것도 90도의 힘차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거치된 카메라 뒤에 제작진이 존재했는지의 여부는 관객의 입장에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단적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서 잠시 밝힌 대로 이 공간에는 공교육 시스템 속에서 여러 문제를 경험한 학생들이 모인다. 극 중에서 소개되는 바를 보자면, 스트레스로 인해 섭식장애를 겪어 힘들어했던 학생도 있고, 아버지의 갈등을 이기지 못해 마음속에 큰 상처를 받은 친구도 있었다. 직접 소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매체나 주변을 통해 흔히 알고 있는 여러 관계적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찾아온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 분명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카메라를 향해 그렇게 밝고 환한 인사를 먼저 건넬 수 있다는 것은 그 과정이 회복과 재생의 시간 속에 있음을 충분히 증명해 낸다.

이들에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은 그 외에도 꽤 다채로운 활동과 경험으로 채워진다.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로 녹여내며 함께 공유하기도 하고, 텅 빈 논에 김을 매며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기도 하는 등 그동안 억눌려있던 내외면의 성장을 함께 도모한다. 성적의 압박과 권위적인 태도로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던 부모와의 관계 역시 재정립되는 과정에 놓인다. 이제 이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먼저 감정으로 교류하는 쪽으로 새로운 관계의 싹을 틔울 것이다.

04.

그렇다고 해서 기숙형 전환 학교이자 대안학교인 꿈틀리 인생학교에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교육의 분리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에 속한다. 교육 기관에서의 교육만큼 가정에서의 교육 또한 함께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교육 기관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퇴소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안 학교가 필요한 학생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닌데 학생 수가 점차 감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어려움이다.

이는 선택과 방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아직 존재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선택과 완전히 다른, 잠시 쉬었다 나아가는 일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현재의 출렁이는 현실을 더 부추긴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시스템에는 아직까지 백 퍼센트 자체 조달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운영 자금 확보의 문제도 함께 연결돼 있다. 이런 구조의 대안 학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쉽게 구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꿈틀리 인생학교를 졸업한 거창 연극고 3학년 황하름 학생은 지금 현실로 돌아가 무대 감독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교내에서 꾸려진 연극 무대를 직접 구성하고 지휘한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지난 1년의 시간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면 거짓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분명 후회는 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만약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그는 어떤 모습의 학생이 돼 있을까?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미디어나무(주)

05.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

지금 꿈틀리 인생학교는 1년제 기숙형 전환 학교의 운영을 잠시 쉬고 있다. 운영을 결심하던 때의 마음처럼 중단을 결심하는 일도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어떤 결정을 해도 괜찮다'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잠시 멈춰가도 괜찮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그 결정을 앞둔 시점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받게 돼 더욱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그 또한 괜찮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만 같다. 현재는 단기형 프로젝트로만 운영되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제작되던 시점에서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대상은 분명했으리라 생각한다. 앨리스, 아직 꿈속을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우리 아이들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그 괜찮다는 말의 크기가 훨씬 더 부풀어 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모두, 마음이 작아진 채로 하나의 조각처럼 사회를 지지하고 있을 이들 모두다. 양적인 성장 속에서 각자의 꿈을 찾기보다는 그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고 기대되던 우리.

그래서일까? 내일을 생각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은 되려 내일을 생각하는 일을 멈추고 오늘의 행복을 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2024년 11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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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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