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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날 잃어선 안 된다? 이 드라마 보며 다시 배우세요

[리뷰] ENA <나의 해리에게>...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진솔하다

24.10.25 11:46최종업데이트24.10.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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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나의 해리에게>의 주은호(신혜선)는 PPS의 아나운서이다. 젊은이들의 로망이라는 그 직업이 그녀에게는 마치 시시프스의 형벌과도 같다. 매일 산 정상으로 돌을 굴려야 하는 숙명처럼 하루하루를 버틴다. 폭풍우 치는 바닷물 속에도, 죽은 시체가 나 뒹구는 냉동 탑차에도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래서 아나운서의 품위를 손상한다고 후배가 대놓고 저격을 해도 기꺼이 사과해 마지 않았다.

그런데 악착 같이 버티던 그녀가 사라졌다. 그토록 애착을 느끼던 새벽 프로그램조차 포기한 채.

21일 방영된 9회는 그렇게 사라진 주은호로부터 시작된다. 주은호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왜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버티던 삶으로부터 튕겨져 나갔을까? 앞서 8회 드라마의 엔딩은 단 한 마디였다. 바로 정현오(이진욱)가 결혼한다는 그 한 마디.

정현오와 주은호는 아나운서 동기로 8년이라는 시간을 연인으로 같이 했다. 관심이 있냐, 없냐로부터 시작해서 "왜 나랑 사귀냐", "너를 사랑하니까"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은호의 입에서 나온 그 순간 정현오의 단호한 마침표로 마무리됐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8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냐는 말에 정현오는 이별이 그런 거라며 움켜 쥔 주은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뺐다.

<나의 해리에게> 정현오와 <헤어질 결심> 해준의 공통점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화면 갈무리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화면 갈무리ena

헤어진 지 4년이 지나도록 서로 으르렁거리던 어느 날, 드라마는 뒤늦게 현오의 속사정을 드러냈다. 엄마는 멀리 떠나며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남은 아버지는 날마다 빛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도박으로 날을 보냈다. 도박하는 아버지 뒤에서 책을 보며 공부하는 현오를 아버지의 친구들은 희한하게 봤다. 그런 아버지마저 사라지고, 홀로 남은 현오 앞에 양미자가 나타났다. 명목이야 아버지의 남은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지만 현오를 눈여겨 본 양미자는 그에게 제안을 했다. 그를 키워줄 테니 대신 나이가 들어가는 양미자의 다섯 자매를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현오의 어깨 위에는 다섯 할매가 얹혔다. 현오는 생각했다. 이건 자기만의 몫이라고. 그 누군가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얽매여 자신의 무게를 나눠지게 할 수 없다고. 그랬기에 현오는 은호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단칼에 이별을 선언했다. 아마도 당시 현오는 그게 나름 은호를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박해일)도 그랬다. 형사라는 자신의 존재에, 결혼을 했다는 자신의 처지에, 서래(탕웨이)와의 사랑은 안될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녀와는 살인사건으로 만났다. 남편을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여자였다. 해준도 생각했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두 사람에게 나은 것이라고.

<헤어질 결심>의 해준도, <나의 해리에게>의 현오도 모두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사랑이 뭔지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사랑은 서로의 경계가 무너져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지만 사랑 앞에서 그 말은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사랑이라는 세계가 무너졌을 때, 무너뜨린 당사자야 자신의 결심대로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아갈 테지만, 무너짐을 당한 당사자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헤아리지 않는다. 자신의 결심을 지키는 게 때로는 더 중요할 테니.

현오는 자신을 찾아온 강주연(강훈)을 통해 비로소 은호에게 생긴 일을 알게 된다. 은호에게 해리성 성격장애가 생겼음을, 발병 시기가 동생인 혜리가 사라진 시점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헤어진 4년 전이었음을. 혜리로 살던 은호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현오는 비로소 깨달으며 오열한다. 자신의 이별이 은호의 세상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자신의 결심에 충실하려 했던 <헤어질 결심>의 해준은 끝내 서래를 놓치고 만다. 무너진 세상 속에서 동아줄이라고 믿었던 임호신(박용우)을 잡았지만 그마저 썩은 동아줄이었다. 살기 위해 또다시 두 번째 남편마저 세상에서 지운 서래는 이제 해리처럼 자신마저 지우려 바다로 떠난다.

뒤늦게 서래를 찾아온 해준이 마주한 건 밀물 속에 흔적조차 찾을 길 없는 황량한 바다였을 뿐이다. 목놓아 '서래씨'라고 불러도 답은 없었다. 그의 '결심'이 어떻게 한 여인의 삶을 무너뜨렸는가 처절히 목도할 뿐이다.

적나라하게 그려낸 사랑의 본모습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화면 갈무리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화면 갈무리ena

다행히 드라마는 우연을 통해 현오와 은호 커플을 구제한다. 지겹게 방송국으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찾아간 곳에서 현오는 은호를 만났다.

현오와의 이별로 자신의 세상이 무너졌던 은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현오를 미워했다. 가질 수 없으니 미워한다고 했다. 미움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방어였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만이 가득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언니가 일하는 방송국 근처 주차장에서 일하면 행복할 거라던 동생을 떠올렸다. 인맥이라도 쌓으라며 졸업여행에 내몬 은호와 달리, 언니만 있으면 그 무엇도 바랄 것이 없던 동생이 돼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주연을 만났다. 자신의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는 그와의 만남에서, 혜리가 된 그녀는 은호를 저리 밀쳐버리고 싶을 만큼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현오의 결혼 소식은 그런 도피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싫다'며 떠났던 은호, 그러나 은호가 돌고 돌아 깨달은 건 뜻밖에도 '사랑'이었다. 세상에 혼자뿐이라고 느꼈던, 그래서 행복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시간에 함께해준 한 사람은 바로 정현오였음을, 도망치고 도망쳤던 은호는 깨달았다. 자신을 버리고 도피한 시간 끝에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때 현오가 그녀를 불렀다.

<나의 해리에게>는 여주인공의 해리성 성격장애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는 아니지만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려 애쓴다.

사랑을 한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그런가 하면 사랑이라는 세계가 끝났을 때 한 사람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 그건 자존과 결심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해리에게>가 보여준 사랑은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진솔하다.
나의해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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