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첨벙>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세은(하승연 분)은 새벽같이 수영장으로 향한다. 누구보다 먼저 아침을 여는 사람, 청소원이다. 어느 날 세은은 같은 건물에서 수영 강사로 일하는 친구 수경(김무늬 분)을 만난다.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강사증을 목에 걸고 자신감마저 넘쳐 보이던 그의 모습. 어쩐지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두 사람은 과거 함께 수영 선수 생활을 했던 사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사람은 탈의실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여전히 수영장의 레인 위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직업의 귀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멀어진 사람과 꿈의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영화 <첨벙>의 진짜 이야기는 세은과 수경이 마주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 3년 전 남편 종수(신범철 분)를 만나 결혼을 하며 현실적인 이유로 수영을 그만두어야 했던 세은과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자 결혼까지 미뤘지만 결국 실패하고 지난해 결혼과 함께 지금의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 강사가 된 수경의 만남이다. 두 사람은 모두 꿈을 성취하지는 못했다. 강사가 된 수경조차 자신이 꿈꾸던 자리는 아니다. 있지도 않은 아이가 있다고 말하는 세은의 감춰진 마음은 그다음이다.
02.
극 중 두 인물은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다. 놓여있는 문제는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경력 단절이다. 허다희 감독은 두 이물을 서로 마주 보는 자리에 위치시킨다. 아이를 갖기 위해 경력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과 임신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놓인 여성이다. 하나의 문제 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어려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정확히 포착해 낸 설정. 유사 소재를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에 비해 명확한 강점을 보이는 지점이다.
이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 세은이라는 인물이 결혼과 출산 앞에서 주체성을 잃어가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부분 또한 흥미롭다. 과거 선수 시절에는 생리를 이유로 훈련을 거부할 정도로 강단 있고 인물이었던 그녀는 남편과 산부인과, 시험관이라는 현실로 인해 자기 뜻을 오롯이 드러내지 못하고 삼키는 모습으로 지금 표현되고 있다. 수경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수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던 남편 종수(신범철 분)의 태도가 현재의 모든 상황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