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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괴짜' 캐릭터 많지만, 이 남자는 좀 다른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847] BBC <셜록> 시즌3

24.10.07 11:17최종업데이트24.10.0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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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스틸컷

▲ 셜록 스틸컷 ⓒ BBC


<셜록> 시리즈를 가히 세계적 명작으로 발돋움 하게 한 시즌2는 주인공 셜록 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숙적 제임스 모리아티와 두뇌 싸움을 벌인 끝에 빌딩 옥상에서 투신한 것이다. 존 왓슨(마틴 프리먼 분)을 포함해 애정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그 사연을 아는 시청자들 중에선 맘 졸인 이가 적지 않았을 터다.

시리즈의 선장이 누군가. 저 유명한 스티브 모팻이다. <닥터 후> 시리즈부터 <셜록>의 총제작자까지, 영국 드라마 산업의 중추라 해도 좋을 그가 이제 막 출범한 배를 그대로 고꾸라뜨릴 선택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 쿠키영상을 통해 셜록이 살아 있을 수 있단 것을 알린다. 제 무덤을 찾은 존을 저 멀리서 훔쳐보는 장면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시즌3의 첫 발은 셜록이 살아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년 만의 복귀작이었기에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에서도 셜록은 죽음으로부터 귀환해 더 강해지지 않았던가. 충분한 동기, 시청자와 셜록의 단짝인 존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첫 에피소드를 이룬다.

죽은 셜록을 다시 살려내야 하는 첫 에피소드는 '빈 영구차(The Empty Hearse)'다. 이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는 가히 <셜록> 시리즈 전체 역사상 가장 큰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왜 아닐까. 앞서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사망한 셜록을 살려내야 하고, 거기엔 그가 그럴 밖에 없었던 사유부터 기발한 사연까지가 깔려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째서 친구인 존이 보는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나. 그 죽음을 어떻게 예비했고,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가. 원작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하는 '라이헨바흐 폭포'를 가져와서 셜록의 죽음을 그대로 활용하는 드라마의 결정이 이 작품의 가치를 내보이리란 평가가 많았다.

1272만명 동시시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쓰다

BBC One 채널 역사상 독보적인 드라마 첫 회차 시청률이 나온 건 그 같은 관심의 방증이다. '빈 영구차'는 무려 1272만 명 동시시청 기록이 나왔다. 국민 열 명 중 두 명이 TV 앞에 앉아 이 드라마를 본 꼴이다. 전작이 방영되고 2년이 지나는 동안 시즌3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어떠했는지를 알도록 한다. <닥터 후>가 세운 기록들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BBC 역사상 최고 인기 드라마로 올라선 시즌2의 아성을 시즌3가 넘어서게 되리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품이 방영된 2014년 주연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비로소 월드클래스 배우 반열에 올랐단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본래도 할리우드 작품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던 그였으나, 2013년 <스타트랙 다크니스>, <노예 12년>에 이어 2014년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자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마블시리즈의 한 축인 <닥터 스트레인지>에 출연하게 되는데, 바야흐로 세계 최고의 배우로 올라서게 되는 시기라 해도 좋겠다. 상종가를 올리던 주연배우의 활약과 함께 시리즈 전체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빈 영구차'에서 셜록은 과거 제 죽음이 모두 일부러 조작한 것임을 알린다. 숙적이라 해도 좋을 모리아티와의 두뇌싸움으로부터 죽음을 조작해 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과정까지를 설명해나간다. 모리아티의 조직을 피해 전 세계를 떠돌던 셜록이다. 2년에 걸쳐 떠돌던 그를 형인 마이크로프트가 불러들이니, 그의 첩보망에 런던에 대규모 테러가 있을 거란 소식이 들려온 때문이다. 돌아온 셜록은 옛 파트너 존에게 접근해 관계를 복원하려 한다. 보조의 역할로 최적인 존의 존재가 제가 실력발휘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단 걸 깨달은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존에게 사실을 알리지 못했단 걸 납득시켜가는 과정은 스스로를 '고기능 소시오패스'라 말하는 셜록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탁월한 역량을 갖췄으나 인간성이 결여된 인물, 그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조금씩 사회화되는 과정이 셜록의 추리 만큼이나 중요한 드라마적 재미를 준다.

너에게만 따뜻한 괴짜 천재

셜록 스틸컷

▲ 셜록 스틸컷 ⓒ BBC


기실 셜록의 캐릭터는 늘 먹히는 드라마적 설정이라 해도 좋다. 뛰어난 괴짜가 가까운 누구에게만 마음을 열고 차츰 좋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한 전형이 된다. 성공한 드라마만 해도 <빅뱅이론>의 셸든 쿠퍼, < 하우스 M.D >의 닥터 하우스, <크리미널 마인드>의 스펜서 리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등 수두룩한 것이다. 이 같은 작품은 성격파탄자이거나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듯 보이던 인물들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포착해낸다.

탁월한 인물에 대한 동경과 질시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때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축소해 인물에 대한 관객의 호감을 높이는 건 캐릭터 창작의 기술이라 해도 좋다. 특히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인물로써 캐릭터를 설정했다면 시청자가 역량이 아닌 측면에서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설정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평범한 인간 존 왓슨과 그를 통해 변화하는 셜록의 감성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가 된다.

원작 소설에선 추리에 집중할 뿐 인물 간의 이야기를 상당히 절제하는 반면, 드라마는 셜록과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적극 부각한다. 존뿐 아니라 그렉 레스트레이드 경감(루퍼트 그레이브스 분), 집주인 허드슨 부인(우나 스텁스 분), 부검의 롤리 후퍼(루이즈 브릴리 분) 등이 그렇다. 원작이라면 수십 개의 에피소드를 건너 겨우 한두 번 마주할 셜록의 인간적 측면이 드라마 상에선 거듭 등장한다. 좀처럼 마음을 쓰지 않는 듯 불친절한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타인을 고려한다.

부각되는 캐릭터, 무너지는 이야기

셜록 스틸컷

▲ 셜록 스틸컷 ⓒ BBC


'빈 영구차'는 이같은 셜록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회차다. 본연의 목적이라 해도 좋은 추리를 통한 위기의 극복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목적으로 남겨진다. 셜록이 존에게 다시 다가서는 것, 그 관계의 복원이 주된 이야기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건 셜록의 탁월한 추리력이다. 지난 시즌의 가짜 죽음과 그것이 불러온 효과를 드라마는 명쾌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또 닥쳐온 새로운 위협, 즉 런던에의 테러 위기를 해소하는 일 또한 급작스럽게만 그려진다. 중요한 건 오로지 셜록과 그 친구들의 관계일 뿐이라는 듯한 구성과 연출이 <셜록> 또한 그렇고 그런 흔한 대중 드라마일 뿐이란 깨달음을 안긴다.

셜록의 죽음과 부활이 작위적이고 허술하게 그려지는 건 치명적일 수 있는 약점이다. 그간 독보적 천재로 꾸며졌던 셜록의 역량이 '빈 영구차' 외에도 '세 사람'과 '마지막 서약'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셜록이 그저 탁월한 재주를 지닌 평범한 인물이 되어가며 셜록만이 가졌던 특수한 매력들이 조금씩 소실되어 가는 것이다. 이쯤이면 셜록이 아닌 저기 다른 드라마 속 괴짜천재 캐릭터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존과 메리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하객 중 한 명이 죽게 되리란 사실을 확인하는 에피소드가 '세 사람'이다. 밀실 살인 추리극이 될 수 있는 이 특수한 작품도 결국은 친구 부부의 결합을 축하하는 셜록의 성장으로 꾸려지니 이 드라마의 목적지가 셜록에게 인간적 성장을 부여하는 것임을 알도록 한다.

드라마 왕국 BBC, 세계를 점령하다

셜록 포스터

▲ 셜록 포스터 ⓒ BBC


마지막 에피소드인 '마지막 서약'은 막대한 정보를 쥐고 정재계 거물들을 협박하는 재벌 찰스 오거스터스 마그누센과의 대결을 그린다. 모리아티가 부재한 상황에서 만들어낸 거물급 악당이 다시금 극에 긴장을 불어넣지만, 그 해소법은 여러모로 아쉽다. 지난 시즌 막판에 있었던 모리아티의 죽음이야 원작 소설에서 차용한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번에도 죽음과 반전이란 자극적 설정이 추리물이 가져야 할 짜임새를 상당부분 앗아가는 것이다.

여러모로 <셜록> 시즌3는 괴짜 천재 캐릭터의 인간적 성장을 주요 축으로 삼아 전진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본연의 매력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가게 된다는 문제를 노정한다. 원작이 가진 확고부동한 캐릭터의 강함이 쉽게 변하고 성장하는 평이함으로 소실되는 가운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작품이 한계에 부닥치게 되리란 걱정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셜록> 시즌3는 독보적인 성장을 했다. 1272만 명이 동시 시청했다는 첫 에피소드를 포함해 전편 모두가 평균 시청자수 100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전 세계 240여 개 국가에서 방영됐을 정도로 BBC의 콘텐츠 판매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는 역대 BBC 드라마 가운데 최다 판매량이다. 시즌2가 인기를 구가했던 중국에서도 앞선 시즌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조회수를 기록하며 셜록 신드롬을 일으켰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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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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