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탐구
티캐스트
40살 여성으로서, 소피아는 살아오며 많은 것을 경험했다. 안정적인 관계의 편안함과 무엇보다 예측가능성을 선호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을 채우지 못했다. 실뱅과 관계는 육체적 탐닉을 넘어, 그가 그동안 알지 못한 자유와 새로운 자아를 찾게 해준다.
그러나 열정적이고 격렬한 실뱅과의 관계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한다. 40살 여자는, 41살 생일을 맞으며 받게 된 실뱅의 청혼을 일단 승낙하지만, 고민 끝에 거부한다. 불혹의 여자는 두 남자를 모두 떠나보낸다. 둘 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뜻일까.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얘기보다 애초에 진정한 사랑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해야 하지 싶다. 진정한 사랑이란, 협의란 단서를 달아, 플라톤적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 '플라토닉 러브'여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란 게 원래 없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본성(The Nature of Loving)'이 인간에게 주어져서 사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느냐만이 관건이 된다.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텐데, 나로서는 이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진정으로 사랑하기'로 느껴진다. 후자의 '사랑하기'는 동사를 기본으로 하기에 그 목적어에 최종적으로 자신이 포함된다.
소피아는, 자비에를 대체한 실뱅과의 관계가 완벽한 대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비에와는 거부한 2세를 실뱅과는 가능하다고 믿게 한, 몸속의 DNA까지 뒤흔든 사랑임에도 불혹의 여자는 41살 생일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뱅과 맺는 관계에 대한 확신 부재와 결혼이라는 제도적 구속에 대한 두려움 등 많은 생각이 41살의 변화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소피아에게 사랑은 단순히 열정이나 욕망의 문제가 아니며, 자신의 삶 전체를 고려한 선택과 행동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만일 주인공이 30살 여자였다면 양상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립(而立)은 자신이 휘청거리면서도 휘청거리는 줄 모르고 바로 섰다고 착각하는 나이이니 말이다. 현실의 '불혹'들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러고 보니 불혹(不惑)의 소피아는 유혹당하면서도 유혹당하지 않는 지혜를 지닌 것으로 그려진 셈이다. 국내에 앞서 2023년 해외에서 이 영화가 개봉될 때 1983년생인 초크리 감독의 나이가 40살이었다. 초크리는 극중에 소피아의 친구 역으로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