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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향적인 여성의 속내

[넘버링 무비 386]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24.09.06 16:23최종업데이트24.09.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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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여겨지는 사회생활조차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머물고 있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타인의 자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고, 규칙이나 예의에 대해서도 경험해 본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점점 더 자신을 떨어뜨려 놓으려고만 한다.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에 등장하는 프랜(데이지 리들리 분)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내성적인 30대 직장인. 그녀는 자신이 그어놓은 테두리 안에 인생을 가두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린다.

그는 자기가 선택한 일상의 단출한 것들 외에 특별히 더 원하는 게 없다. 물품 담당으로 일하는 회사 안에서 컴퓨터 화면 위에 띄워져 있는 프로그램의 스프레드시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동료와 인사를 나누거나 커피챗을 나누는 일은 일상을 깨는 행동에 속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매일 같은 간편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이 드는 극도로 정제된 생활을 한다. 홀로 머무는 집에 환하고 밝은 조명이나 불필요한 인테리어 제품도 사치다. 그게 잘못되었다거나 망가져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시작과 함께 프랜이라는 인물에 대해 집요하리만큼 강조하고 있는 부분,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 프랜의 삶은 회사 동료인 캐롤(마르시아 드보니스 분)의 퇴사와 함께 그 자리를 대신할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 분)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자기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까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살아가는 그의 태도가 자신의 영역에도 조금씩 영향력을 미쳐오기 시작하면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프랜은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며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하다.

02.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제39회 선댄스영화제 US 드라마틱 경쟁 부문 개막작으로 레이첼 램버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2019년 스테파니 아벨 호로비츠 감독이 연출한 동명(정확히는 콤마(,) 하나의 차이가 있다 - 기자 말)의 단편 영화가 시작점이 됐다. 원작에서는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여성이 화자가 되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호의적인 마음과 다가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 사이의 내면이다.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원작의 내용으로부터 죽음과 생의 연관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감각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만의 경직된 삶을 살아가는 프랜의 이야기는 이 작품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촬영된 사실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작품의 내용에서 그 배경이 직접적으로 설명되거나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레임 곳곳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시절의 감각이 공유되는 듯하다. 강요된 단절과 격리 속에서 관계를 맺고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잠시 잃어버렸던 시간으로의 회귀. 실제로 당시 팬데믹 기간에는 이 작품의 원제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처럼 죽음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03.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프랜이 경험하는 자발적인 단절과 맞닿아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감각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 대신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만의 공간', 내면의 상상에 빠지는 순간은 꽤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과도한 외부 자극으로부터의 회복인지, 과거 어떤 사건으로부터의 회피인지에 대해서 영화가 알려주는 것은 없지만 이 순간은 꽤 꾸준한 빈도로 발현된다. 영화는 이 상상을 울창한 숲 한 가운데의 잘 마련된 공터나, 고요한 해변 모래사장 위의 작은 통나무 쉘터와 같은 공간에 그녀를 홀로 내던지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죽음에의 이미지, 슬픔이나 공포, 어떤 기괴함과 같은 감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녀의 상상 혹은 꿈속에서 죽음은 그녀가 현실에서 다다르고자 하는 삶의 원형이 가장 잘 정제된 형태로 완성된 모습이다. 고요하고도 단순한, 어떤 순간에는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장면. 이에 대해 프랜은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죽음의 감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죽음을 성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일종의 호기심,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져서라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한글 타이틀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의 죽음은 영화가 말하는 죽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죽음에 대한 갈망 뒤에 성취하지 못한 사랑이 뒤따르는 것 같은 의미의 타이틀과 달리, 프랜이 생각하는 죽음에는 환기와 삶에 대한 역설이 담겨 있어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이란, 달성해 내야 하는 목표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이 머무는 현재의 자리와 모습에 대한 불안의 반영과도 같다. 자신이 완성해 낸 고립과 새로운 연결고리에 대한 갈망 사이의 딜레마라고 할 수도 있겠다.

04.
영화의 초반부에서 설명되는 인물의 삶이 프랜 스스로가 만든 단절된 상황에 대한 것이라면, 로버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비춰지는 새로운 모습들, 두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숨은 재능'은 새로운 연결고리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랜은 로버트의 제안에 처음 보이던 모습과 달리 생각보다 열린 태도를 보인다. 영화관 데이트에 응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에 없던 미소를 보이는 일, 첫 데이트 이후 처음으로 아침 인사를 먼저 보내는 모습 등은 그녀가 현재의 삶을 정확히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경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자인 삶에서는 매일 같은 간편식만 먹으면서 게를 손질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참여하게 된 마피아 게임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의 삶이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프랜은 여전히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면을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잃었던 거리감을 되찾고자 한다.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05.
"내 자리에서 크레인이 보여요."

특이하게도, 레이첼 램버트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가 가진 딜레마와 복잡한 감정을 완성해 낸다. 이 영화가 프랜의 과거나 현재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이유다. 만약 이 영화에서 인물이 가진 죽음과 관련된 서사가 마련되고 설명되기 시작하면, 우리가 프랜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력을 잃고 수동적인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극의 형태에서 벗어나 있는 이 작품이 마지막 장면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밀도 있게 채워진 서사의 완성이 아닌 인물의 서사가 가진 공백에 대한 의문인 셈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버트에게 사과를 건네고 솔직한 고백을 꺼내던 프랜의 모습은 잃어버렸던 하나의 조각처럼 영화 전체의 틀을 오롯이 채울 수 있게 된다. 홀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방적이고 답답한 관계에 조금씩 지쳐가던 남자의 마음을 해소하는 것만큼이나 무엇 하나 명확한 것 없이 이야기를 지속해 오던 중심인물의 심리가 정확히 떠오르는 장면이 될 수 있어서다. 과거와 계기에 대해서까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제 어떤 마음으로 그녀가 자신의 틀 안에서만 부유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분명 독특한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독의 말처럼 어떤 감정이나 사실도 단 하나만으로 완성되고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다소 모호하지만 어떤 딜레마를 정확히 재단하지 않는 이 작품의 화법이 되려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보다 수면 아래를 유영할 때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품이 아닐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데이지 리들리 배우의 위화감 없는 선명한 연기가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이 스카이워커와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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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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