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갈등과 불공정, 불평등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나날이 심해지지만, 이를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비율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노동운동의 단일 대오가 깨진 데다 노동운동에 거는 기대도 예전만 못하다.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저항이 제대로 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통치가 더 정교해졌기 때문일까. 사회가 다원화하고 복잡다단해지면서 저항의 대상이 불명확해지고 대립 전선이 계속 늘어나고 겹치면서, 거대한 적이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2015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은 이러한 사회 변화와 관련이 있다.
명확한 거악
<베테랑>은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격렬하게 대치하는 영화다. 도식은 할리우드이지만 내용은 한국을 담는다. 정의롭고 마냥 직진 스타일인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무능하고 타락했지만 안하무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사이의 대결을 코믹 액션으로 그렸다.
<베테랑>은 경찰의 활약상을 그린다. 서도철이 "죄짓고 살지 마라"는 말을 달고 살며, 감당할 수 없는 거악에 맞서 근육질 권력을 행사한다. 영화 속 내용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관객은 제작진을 비난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응징할 수 없는 금권(金權)을 '근육'이나 자랑하는 일개 형사, '근육' 말고는 관객과 다를 게 없는 경찰이 혼내주는 게 그래서 통쾌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그래서 가장 부패한 권력을, 관객과 형사가 응징하는 기분이라 대리만족을 준다.
개봉 이후 경제 연구소인 자유경제원에서 이 영화를 사회적 포르노라 부르며 비난했는데, 바로 이 지점이 <배테랑> 영화의 성공 비결이다. 포르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욕망만을 골라 형상으로 구체화한다. 모두가 공유하는, 혹은 모두가 공유하게 된 욕망을 현실로 누릴 수 있는 소수의 능력이 자본주의에서는 권력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가상인 것이 다른 누구에겐 현실이 된다. 현실을 가상화하고 유통해 현실 대신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 사회적 포르노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포르노를 만들어낸 것이 류승완 감독의 재능이다.
이 영화는 가피학증(Sadomasochism, 아래 SM)의 성격까지 지닌다. 서도철이 조태오에게 하는 응징과 폭력은 금지된 폭력이기에 영화적으로 성취된 일종의 사회적 사디즘이 된다. SM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한 쌍이기에 당연히 마조히즘도 작동한다. 금지된 폭력의 비자발적 수용을 그렇게 규정할 수 있을 법하다. 단지 재벌의 실상을 풍자했다는 사회성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아니다. SM이 가미된 사회적 포르노가 됐기에 영화는 성공했다. 사실 풍자와 포르노는 별개가 아니다. 두 특성은 겹치며 증폭한다.
응징의 주체
장르가 코미디이기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서 희극성이 엿보인다. 희화화가 더 강하게 들어간 쪽은 '서도철과 아이들'이다. 서도철 외에 20년 경력의 승부사 오 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육체파 왕 형사(오대환), 막내 윤 형사(김시후) 등 서울청 광역수사대 강력반 구성원은 모두 나사가 하나씩 빠진 사람 같다. 막내는 얼굴과 안 어울리지 않는 사투리를 쓴다. 마치 개그 배틀을 벌이는 사람들 같다.
재벌 3세를 때려잡는 면면이 황당해야, 말하자면 모종의 현실 반성에서 멀어질 수 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아는 관객의 심리적 저지선을 돌파하려면, 응징하는 주체에게 현실성이 떨어지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우회 전술이 필요하다. 지랄 같은 현실에 만화 같은 솔루션이 잠깐은 먹힌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해진 일종의 마약인 셈이다.
직접적인 노자 대결을 피하고 중간에 공권력을 개입함으로써 또한 이념적인 거부감을 우회했다. 노조에 가입한 트럭 운전사 배철호(정웅인)가 스토리라인에서 점화 역할을 맡는데, 배철호는 정규직이 아닌 외주노동자다. <베테랑>이 개봉하고 보수언론에서 이 영화를 이념적으로 꽤 공격했다. 예컨대 동아일보에 게재된 "베테랑의 공식 '재벌은 악(惡), 민노총은 선(善)" 같은 칼럼은, 굳이 안 읽어도 제목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
영화 속의 선과 악에 과장이 들어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에서 그린 것과 같은 재벌이 현실에 똑같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오'를 그렇게 중시하는 서도철 같은 형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묘사한 선과 악을 모두 허위로 볼 수는 없다.
일단 악은 엄연한 실제이다. 추상으로서, 총체로서 재벌은 조태오와 다르지 않는 면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선은 100% 허위이다. 서도철이 보인 것과 동일한 의지를 불태우는 경찰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경찰력의 시스템이 지닌 본원적 한계도 있을 것이다. 서도철이 보인 돈 없는 '가오'는 만화적 상상력에 가깝다.
영화의 최초 기획은 서도철 등 광역수사대 경찰이 자동차 절도 및 밀매조직을 소탕하는 내용이었다고 알려졌다. 이후 여러 차례 각본이 바뀌면서 지금의 영화가 됐다. 최초 기획안을 압축해 영화 초반에 넣고, 그 과정에서 서도철과 트럭 운전수 배철호를 만나게 했다.
극중 조태오의 캐릭터는 타락한 재벌을 종합선물세트로 구성한 것으로 관객은 꽤 설득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볼 것이다. 어차피 재벌 2·3세의 생활은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재벌의 비밀 생활은 가끔 터져 나오는 불미스러운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재벌가의 구성원에게 돈은 엄청난 특권이지만,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타락의 함정이기도 하다. 대중은 함정에 추락한 재벌의 모습만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재벌에게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실체는 없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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