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인디스토리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대가족은 기본적으로 세대 갈등을 노출한다. 세대 갈등은 인류 역사에 없었던 적이 없으며, 역설적으로 갈등은 대체로 발전의 동인이 됐다. <장손>이 그린 단층에는 3대에 걸친 세대 갈등에다 이념과 젠더 갈등이 투영되며 애매하지만 계급갈등의 양상도 엿보인다.
경상남도 합천의 실제 한옥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배우들의 실감 나는 사투리 연기를 통해 한국 미시사의 횡단면에서 거시사를 종단한다. 기본값은 가부장제이다. 영화가 담아낸 제사와 장례는 실제 생활을 그린 것이지만, 영화가 그린 것과 같은 그런 장례와 제사를 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영화가 잡아낸 성진 할머니의 장례식은 합천의 풍광과 어울려 아름다운 영상을 관객에게 선사할 것이다. 나만 해도 조부모 장례는 영화와 같은 의례였지만, 부친의 장례는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현대화한 의례로 치렀다. <장손>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비망록이다.
영화 <장손>의 저변에 자리한 가부장제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이어지며, 현재에서는 젠더갈등을 유발한다. 성진과 성진의 누나(김시은) 사이에, 또 성진의 아버지(오만석)와 성진의 고모들 사이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그래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녀차별이 깊이 자리한다. 그러나 카메라는 갈등을 보여주되 정색하지 않는다. 유머로 처리한 까닭은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에 옳고 그름에 관해 가르마를 탔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내에서 여성운동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족은 운동의 단위가 아니다. 가족의 시간은 빙하처럼 느리게 아래로 밀려갈 뿐이어서 어떤 사안엔 시간 외엔 답이 없는 것이 있다. <장손>에서 성진의 할머니 말녀가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안 틀고 버티다가, 장손 성진이 오자 기온을 높여 말하며 에어컨을 틀어주는 장면은, 바꿀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눈치를 보는 구세대의 남아선호 사상의 현상이다.
<장손>의 김씨네는 동네에서 큰 두부공장을 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이다. 제사 드리는 게 버거운 가난한 집이라면 가난이 다른 갈등을 잡아먹어 버리기에 감독이 의도한 영화적 표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가업을 두부라는 전통적 식품을 만드는 것으로 설정한 게 나쁘지 않았다. 두부공장의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과 호응하여 관객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