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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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누아르 중심에 여성을 세우는 이유
전술했듯 <신세계>는 박훈정이란 이름을 한국영화판에 아로새겼다. 그러나 이후는 높아진 기대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해도 좋겠다. 2017년 작 <브이아이피>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행하던 페미니즘적 비판 아래 침몰한 건 박훈정의 필모그래피, 나아가 한국 남성향 영화 변천사의 결정적 장면이라 해도 좋다.
여성캐릭터의 활용이며 신체묘사가 부적절하다는 맹폭이 이어졌고, 별점테러까지 받은 끝에 영화는 제 가치를 조명 받지 못한 채 막을 내려야 했다. 그 뒤로부터 박훈정이 이를 악물고 여성을 주인공 삼은 작품들만 줄줄이 찍어내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폭군>은 <마녀>, <낙원의 밤>,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에 이어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박훈정식 누아르다. 김선호, 차승원, 김강우 등 무게감 있는 남성 주·조연들이 활약함에도 극의 중심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조윤수가 분한 자경이다. 본체인 여동생과 오빠의 인격이 한 몸에 든 이중인격 캐릭터에 무시무시한 격투역량을 지닌 본투비(Born to be) 킬러로 그녀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 속 정보부 요원들과 건달, 킬러 중 누구도 그녀와 상대해 우세를 점하지 못할 정도다. 가히 '사기캐', 소위 '먼치킨 캐릭터'가 아닌가.
드라마는 첩보물과 액션, 누아르를 뒤섞은 장르물이다. 속한 곳 없이 길바닥을 전전하는 프리랜서 킬러 자경이 아버지를 잃은 뒤 벌이는 복수극이 어느 순간 한국과 아마도 미국임을 예상케 하는 강대국 사이 물밑 첩보전에 휘말려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국정원 내의 여러 분파 가운데 최국장(김선호 분)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국방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조직 내 강경파의 대표격 인물이다. 한때는 핵보유를 그 수단으로 삼았던 강경파가 이제는 강화인간을 양산하는 '폭군 프로그램'에 사활을 걸었단 게 <폭군>의 설정이다.
불행히도 미국은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아냈고, 요원 폴(김강우 분)을 파견해 바이러스를 가로채려 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바이러스를 손에 쥔 자경의 활약이 상황을 종잡을 수 없도록 꼬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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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부터 시작된 박훈정 유니버스
과학기술을 통한 신체강화, 그를 통한 인간병기화라는 설정은 전작 <마녀>부터 시작된 하나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이기영 등 몇몇 배우가 <마녀> 시리즈와 유사성이 있는 배역을 맡은 점, 또 <폭군>의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난 설정도 이 같은 추측에 힘을 더한다.
그러나 <마녀>와 <폭군>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 유사성과 모호함이 이를 즐기는 이에게는 해석의 즐거움을, 딱 맞아떨어지는 무엇을 원하는 이에겐 실망을 던질 수도 있겠다.
<폭군>의 주된 이야기가 한국과 강대국 사이의 첩보전이란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미 <브이아이피>에서 미국과 한국, 북한, 중국 등이 개입한 물밑 정보전과 첩보전을 다뤘던 그다. 이번에도 평범한 시민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면의 세상과 그 부조리함을 강조하는 가운데, 힘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는 약소국의 현실을 장르물의 배경이자 설정으로 활용한다.
아쉬운 건 여러 경로로 알려진 첩보의 실상과 영화가 다루는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강화인간 바이러스를 쟁탈하려는 두 나라의 물밑 경쟁과 그 사이에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지게 묘사된다. 법과 질서가 없는 양 수십 명의 사람이 죽고 죽이는 상황이 수차례에 걸쳐 반복되는데도, 그로부터 어떠한 제약이나 사회적 후폭풍도 일지 않는 것이다.
이밖에도 정보조직 내 고위 인사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군사 프로젝트를 국가의 감시 없이 사적으로 수행해왔다는 점도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막연한 상상이 아닌가. 어디까지나 꾸며낸 극일지라도 보는 이를 설득할 만큼의 핍진성은 필요한 것이다.
4부작 드라마를 이어볼 때의 문제 역시 선명하다. 영화라면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갈 이야기가 매회 고조되다 허물어지기를 반복한다. 각 한 회차를 뜯어보자면 기승전결이 있는 구성이라 하겠으나, 전체 이야기를 놓고 보면 잔가지가 많고 필요 이상 늘어지고 마는 것이다. 전체 러닝타임으로 보자면 영화와 비슷한 작품이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될 때의 이점이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러모로 <폭군>은 박훈정의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마녀>가 아닌 <신세계>를 기준점으로 잡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한때는 한국 누아르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라 기대했던 이다. 그러나 그의 현재는 <폭군>이다. 한국 영화, 또 누아르의 팬이라 자임하는 이 가운데 누가 이 작품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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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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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감독의 아쉬운 신작... 왜 이름값을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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