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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이 영화에 달린 감상평

[리뷰] 영화 <희생>

24.08.19 13:57최종업데이트24.08.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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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만일 영화를 예술로 부를 수 있다면, 그건 타르코프스키 같은 감독 덕분일 것이다"(잉마르 베리만), "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기적으로서 영화 체험"(장 뤽 고다르) 같은 평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세계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거장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영화 <희생>이 다시 개봉한다. 스웨덴 등 유럽에서는 1986년 5월에, 우리나라에선 1995년 2월에 개봉했다. 당시 국내 개봉에서 예술영화라 보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란 걱정과 달리 관객이 11만 명이나 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있는 관객 감상평이다.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관객 사이에서 나올 법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흐름은 느리고 줄거리가 모호한 가운데 감독이 뭔가 심오한 얘기를 하는 듯하지만, 친절하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대단한 감독의 대단한 작품이란 말을 들어서 간단히 망작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희생'
'희생'(주)엣나인필름

스웨덴 남부 발트해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 영화는 생일을 맞이한 작가 알렉산더가 목 수술을 받아 말을 못 하는 어린 아들 고센과 함께 죽은 나무를 땅에 심고 물을 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느 수도승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자, 그렇게 한 지 3년째 나무에서 꽃이 만발했다는 것이다. 시작과 함께 들려준 이 이야기가 엔딩에서 고센이 한 알 듯 말 듯한 말과 맞물려 <희생>을 통해 타르코프스키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

알렉산더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던 중 갑작스러운 제3차 세계대전 발발과 그로 인한 지구 종말 소식을 듣는다. 알렉산더는 가족과 세상을 구해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그의 기도는 응답받는다. 단순한 스토리다. 다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가 해야 한 일과 구한 후에 그가 한 일이 소위 개연성에 부합하지 않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는 듯하다.

대부분 영화는 개연성의 규칙을 지킨다. 복수나 살인, 사랑을 그렸다면 납득할 만한 스토리라인이 뒷받침돼야 좋은 평가를 받고 관객에게서 외면받지 않는다. 영화 중엔 가끔 이런 개연성에서 벗어나도 괜찮은 작품이 있다. 시가 산문의 서술 방식을 무시하듯, 독자적인 문법으로 특별한 영상을 구현할 때이다. 영상 시인으로 불리는 타르코프스키가 이런 예에 속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에서 감독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시간을 조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시간을 영상으로 조각한 것이란 생각을 <희생>에서도 엿볼 수 다. 여기에 아름다움과 통찰도 담긴다. 시간의 조각에는 역사 의식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역사의 응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사란 영역이 있지만, 이 또한 인간적인 분류이다. 인간이 조각하려 드는 시간에 인간적인 의미 부여가 없는 시간이 있을 수는 없다.

<희생>이 행한 시간의 조각에는 종교적 성찰이 강하게 담겼다. 이 영화는 제3차 세계대전이란 가장 첨예한 역사 인식을 희생의 제의와 요한복음 1장 1절을 통해 영화 언어로 풀어냈다.

     '희생'
'희생'(주)엣나인필름

기독교를 통한 시대 인식

<희생>이 발표된 1986년, 세계는 전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도 전쟁 공포가 공존하지만 당시 동서냉전의 끝단에서 세계인이 느낀 공포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예술의 자유를 찾아서 가족과 생이별하며 조국 러시아를 탈출한 타르코프스키의 망명자 신분 자체에 당시 상황에 관한 많은 함축이 있다.

영화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 알렉산더가 한 일은 하녀 마리아와 동침한 것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비유이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마리아라는 이름은 예수의 어머니 성모를 지시한다. 신약성서의 동침과 상징으로서 수태가 영화에 차용된다. 그리스어 어원상 '인간의 수호자'란 뜻을 갖는 알렉산더의 역할은 중층적이다.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곳곳에 출현한다. 다빈치의 그림은 마리아와 동침으로 연결되고 '마태 수난곡'은 영화의 주제와 맞닿았다. '마태 수난곡'은 마태의 수난을 다룬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을 다루었다. 영화에 마리아 외에 마르타(다른 하녀)까지 나오니 예수를 상징하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극중 아이의 이름은 '고센(Gossen)'이란 스웨덴어로, 영어로는 'Little Man'이란 뜻인데 그대로 'Little Man'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센은 어린 예수의 후보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스토리라인을 보면 기독교 구원방정식이 거의 적용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정녀 출산을 다루진 않는다. 영화 말미에서 알렉산더가 정신병원에 끌려가고 난 뒤에 마리아와 고센이, 부자가 함께 심은 죽은 나무 근처에서 마주치게 한 설정은, '마태 수난곡'과 맞물려 암흑의 시대에서 행한 타르코프스키식의 희망 모색을 보여준다.

희망 모색의 절정은 영화사에서 대표적 롱테이크로 꼽히는 방화 장면이다. 많은 비평가가 이 방화를 알렉산더의 희생으로 해석할 텐데,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보기엔 번제를 연상시키는 일종의 제의다. 제의엔 희생이 필요하다. 알렉산더가 자기가 지닌 걸 희생한다는 해석은 너무 일면적이다. 살던 집을 불 지르고 정신이상으로 오인 받으며 병원에 끌려가는,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 전체를 희생으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아들을 남기고 아름다운 자신의 집을 불 지르고 끌려가는 알렉산더의 모습을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신의 자기희생과 구원 계획을 시사한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심판과 자기희생을 등치 함으로써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한다. 아들 고센은 구원과 희망의 상징이다.

동시에 인간의 자기희생과 죽은 나무에 매일 물을 주는 것과 같은 단호하고 집요한 희망 수행을 요청한다. 신의 희생에 상응하는 인간의 희생과 변화가 필요하다. 알렉산더는 신학적으론 신이고 사회학적으론 인간이다.

     '희생'
'희생'(주)엣나인필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들 고센은 엔딩에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그게 무슨 뜻이죠, 아빠?"

말을 못 하던 고센이 말을 하고,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 심은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 그 나무 둥치에 누워 이 말을 한다. 말을 못 하던 고센이 마지막에 요한복음 1장 1절을 언급한 모습이 물리적 완치에 겹쳐 삶과 세계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아빠는 알렉산더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다. 인간이 신에게 하는 궁극의 질문을 고센이 대표로 던진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은 신약성서가 기록된 헬라어로 '로고스'를 뜻하며 로고스는 말이란 뜻과 법과 이치 등이란 뜻을 동시에 갖는다. 중국어 성서에서 '태초유도(太初有道)'로 번역한 건 후자의 의미를 받아들여서다.

말 못 하던 고센의 발화는 전자의 '말'이고, "그게 무슨 뜻이죠, 아빠?"라는 질문은 후자의 '신의 섭리'에 해당한다. 일단 이 모습은 신에게 추궁하는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 게 있다고 했는데, 지금 세상이 왜 이런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추궁이다.

동시에 독백을 통한 자기 확언이기도 하다. 그런 게 있었어, 거기서 너무 멀리 떠나왔어, 그러니까 다시 돌아가면 돼, 그런 참회와 반성이다. 고센이 둥치에 누워있는 나무는, 죽은 채로 새로 심은 나무고, 3년을 매일 물을 주면 꽃이 필 수 있다고 고센의 아버지가 말한 그 나무다. 지금 죽어있지만, 수도승 같은 노력으로 나무를 살릴 뿐 아니라 꽃이 피게 할 수 있다는, 절망 너머의 희망을 말한다. 통상 요한복음 1장 1절의 로고스는 예수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전설

영화 마지막 부분의 롱테이크는 두고두고 거론된다. 카메라는 알렉산더가 집에 불을 지른 뒤 집이 전소되는 과정을 6분 52초 동안 담았다. 꼼꼼한 준비 끝에 촬영에 들어갔으나 필름이 엉켜 제대로 찍히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다.

제작진의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두 번째로 촬영했고, 이렇게 영화사의 전설적 롱테이크가 살아남았다.

     '희생' 포스터
'희생' 포스터(주)엣나인필름

타르코프스키는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영화 후반작업을 진행했다.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1985년 5월 스웨덴의 섬 고틀란드에서 <희생>을 촬영했고, 11월에 돌아와 편집을 들어갔다. 그해 12월 13일에 암 판정을 받았으며, 망명하며 생이별한 아들과 소련 당국의 허락으로 1986년 재회했고, 아들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대리 수상했다. 1986년 12월 29일 향년 54세로 사망했다.

그의 장편 데뷔작 <이반의 어린 시절>(1962년)은 제2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로부터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년), <솔라리스>(1972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지만, 망명 전 러시아의 열악한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한창 활동할 나이에 숨져 안타까워하는 팬이 많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정부 비밀 요원의 증언을 근거로 KGB(옛 소련 첩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가 그를 죽였다는 음모론이 그의 죽음에 따라다닌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타르코프스키 희생 이반의어린시절 안드레이루블료프 안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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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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