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농장 운영하고픈 아빠, 소소하게 살자는 엄마
제이콥에겐 외딴 트레일러 집은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는 농장을 꾸려 한국음식에 쓰이는 채소를 길러낼 계획이다. 갈수록 늘어가는 한국 이민자를 생각하면 한국 음식, 그에 들어가는 재료가 각광받게 되리란 계산이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얻은 수익만으론 아메리칸 드림, 본래 이민을 오며 생각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막막함이 크게 작용했다. 젊고 힘이 있을 때 어떻게든 성패를 가려보겠단 게 제이콥의 마음이다.
첫 농사다 보니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농장에 필요한 물을 끌어와 대는 것부터가 문제다. 생산한 농작물을 사기로 한 한인 사업가들까지 말을 바꾸니 사업이란 그리 쉽게 성패를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족의 지지라도 있어야 하겠으나, 아내는 아내대로 불안하고 고민이 커서 제이콥의 마음도 좁아지기만 한다.
늘어나는 빚 속에 쉴 틈 없이 일하는 두 사람이다.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간절했다.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아칸소로 오게 된 계기다.
가방엔 비닐봉지로 묶은 고춧가루며 멸치, 한약까지 바리바리 담겼다. 여느 한국 어머니의 마음 그대로, 딸에게 모든 것을 내주겠단 마음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화투를 챙겨와 아이들에게 치라고 권하는 모습을 보자면 또 그렇지가 못하다. 충실한 어머니이기만 하지는 않았구나, 그런 마음이 대뜸 든다. 손주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 모양이다. 할머니 같지 않고 한국 냄새까지 난다며 순자를 멀리 하는 손주들이 어느 프로그램 속 금쪽이를 보듯 당혹스럽기만 하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판씨네마
역경과 이해, 관계와 거듭남에 대하여
<미나리>는 역경과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는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는 역경에 맞선 가족의 도전기가 된다. 이민자의 경제적 어려움과 일상적 인종차별,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 그로 인한 고립과 가난의 위협 등이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운 현실감 있는 실화로써 실감나게 구현된다.
한편으로 영화는 구성원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족드라마이기도 하다. 손자 데이빗이 처음엔 낯설어 하던 할머니 순자를 이해하는 과정이고, 또 사위가 데면데면하던 장모 순자에게 다가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에 지쳐 처음 마음과 달리 멀어졌던 부부가 그래도 남편과 아내라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조금씩 생물학적 가족을 넘어 현지의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 또한 담겨 있다. 말하자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포착한다. 구성원들이 부부와 가족, 이웃이란 이름으로 결합하는 모습을 붙든다. 때로 감당키 어려운 재앙이 있을지라도.
영화의 제목을 '미나리'로 삼은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씨를 뿌려두면 어디서나 억세지만 싱그럽게 잘 자라는 식물이 미나리다. 서양이었다면 이름 모를 잡초였을 것을, 한국인들은 특유의 풍미가 있는 채소로 즐긴다. 억센 생명력과 저만의 색깔을 지닌 식물, 그를 한국계 이민자의 상징으로 뽑아낸 선택이 매력적이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판씨네마
일상도 재난처럼, <트위스터스>에 갖는 기대
정이삭의 드라마는 그저 희망차기만 하지는 않다. 삶 가운데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토네이도를 쫓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트위스터스> 연출은 그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볼 때 점프컷처럼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삶 가운데도 토네이도 못지않은 재난이 언제든 있으니까 말이다.
전 재산이 든 헛간을 태우는 불길은 분명한 재난이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그에 대항하는 모습은 희망이다. 금방이라도 갈라설 듯 위태롭던 저들의 지난 시간이 차라리 더 취약해보였던 것은 이 영화가 재난으로부터 희망으로 다가섰음을 알린다. 화재보다도 부부의 일상적 다툼을 더욱 재난처럼 그린 정이삭이다.
그렇다면 토네이도를 다룬 작품 또한 남다르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정이삭이 <트위스터스>의 적임자라고 주장해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를 감탄시킬 수 있으리라고, 진정으로 다를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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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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