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다큐24> 위드 치매 편의 한 장면.
YTN
한국 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병은 치매라고 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 치매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 환자 수도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과연 치매와 공존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 7월 27일 YTN <다큐24> '위드 치매' 편이 방송되었다. 치매 환자인 할머니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리는 김영롱 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 방송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치매를 두려워하거나 터부시할게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걸 담았다. 다큐 제작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일 해당 회차 연출한 신하은 PD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신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아무래도 처음 다큐 제작한 거라서 애정이 더 컸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다큐24>라는 프로그램 맡기 전에 1년 동안 <탐사보고서 기록>을 제작했었는데요. 의지할 수 있는 선배들과 함께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니 걱정과 부담이 많았어요. 그래서 온 힘을 쏟으려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주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때문에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어요."
- 왜 치매를 오래 생각했나요?
"저도 참 신기한 부분인데요. 치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유독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는 사실 모르겠어요. 제가 PD가 되기 전에 라디오 리포터로도 일을 했었는데 당시에도 치매 환자들을 위한 시설 취재했던 걸 보고 '내가 치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구나'하고 알게 됐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 혹시 치매 환자를 돌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봉사활동으로 요양 시설에 가서 치매 환자들을 잠깐 만난 게 전부였어요."
- 다큐 연출 전 치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저도 치매에 대한 선입견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어요. 치매가 가장 무서운 병이었고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가 치매 걸린다는 건 상상만 해도 두렵고요. 치매 환자는 일상생활이 어렵고 시간이 흐를수록 증세는 나빠지기만 하니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 취재하며 생각이 바뀌었나요?
"치매 환자는 대부분 시설에 가거나 아니면 가족 중에 한두 명의 전적인 돌봄으로 살아가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치매 환자가 100만 명이 넘었고 당장 20~30년 후만 해도 3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어요. 문제는 이들을 다 감당할 시설이 있는지 그리고 과연 그 시설에서 치매 환자 한 명 한 명을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지죠. 그게 아니라면 가족이 돌봐야 하는데 가족은 어떤가요? 치매 환자와 함께 가족도 같이 고립되는데 100만 명의 환자가 각각 보호자 한 사람의 돌봄을 받고 있다면 200만 명이 다 고립되는 사회가 맞는 건가 생각하며 시작했어요.
실제로 현장 다니면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들만 감당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위드 치매'라는 제목도 치매 환자가 급증하는 객관적 현실과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은 거고요. 또 치매 초기와 중기에는 일상생활도 가능하고 어떤 전문가의 말씀을 빌리자면 '귀여운 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저도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요. 롱롱TV를 시작으로 치매 환자들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들을 실제로 봤고, 치매 초기와 중기에 어떤 돌봄을 제공하느냐에 따라서 아예 다른 일상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더라고요."
- 알츠하이머는 치매의 한 종류인데 두 단어의 느낌이 다른 것 같거든요. 치매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는 반면 알츠하이머는 일반적인 병 중 하나의 느낌이 있거든요.
"치매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치매에 대한 선입견이 가득한 채로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실제로 치매라는 단어가 어리석다는 뜻을 가진 한자어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실제로 저희가 만난 치매 환자 가족분들 중에 치매라는 단어가 싫어서 특히 환자 앞에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도 계셨어요. 비록 임기가 지나 폐기됐지만 관련 법안이 계속 발의된 걸 보면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부정적 인식 개선도 필요
-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것은 미디어의 책임이 큰 거 같아요.
"다른 매체에서 이미 많이 보여준 치매의 모습, 이상행동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제가 똑같은 모습을 또 보여줄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나 선입견을 더 강화하고 싶지 않았고, 또 제가 만난 환자들과는 오래 있어도 그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았고요. 우리가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봐온 치매 말기뿐만 아니라 치매의 초기나 중기도 분명히 존재하고 이 시기에는 치매 증세가 심하지 않은 상태로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처음에 5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 받은 노병래 씨와 손녀 영롱 씨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치매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바로 이야기 하고 싶었고, 이 두 분의 이야기가 우리의 선입견을 기분 좋게 깨뜨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영롱님이 할머니를 되게 예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잖아요. 그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게 많았어요. 또 저희가 분량 때문에 방송에 담지는 못했지만, 영롱님이 어떤 상황에서든 할머니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할머니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모습 볼 수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미용사 선생님이 머리 감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본 상황이 있었어요. 보호자 입장에서 치매 환자의 머리를 직접 감기는 것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고 가는 게 훨씬 편하잖아요. 그때 영롱 님께서 바로 할머니 의사를 물었고 할머니는 집에 가겠다고 하셨어요. 당연하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고 옆에서 혼자 반성하기도 했어요."
- 아마 영롱 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뭔가 계기가 있다고 하나요?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어요. 우선 영롱님께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할머니를 돌보다 보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치면서 어느 순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스스로를 보고 놀라 이 과정을 조금 더 재밌게 보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유튜브 첫 영상을 찍으려고 할머니에게 자기소개해 보자고 하셨는데 그때 할머니가 영롱님은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신 거죠. 어떤 이야기인지는 롱롱TV나 <위드 치매>로 직접 보시기를 추천드려요. 영롱님은 유튜브 하면서 할머니를 환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다시 보게 되신 것 같았어요."
- 유튜브 하기 전에는 어땠는지 물어봤나요?
"유튜브 하기 전에는 할머니께서도 지금처럼 방긋방긋 웃기보다는 무표정이셨고, 영롱 님도 기저귀 갈자거나 씻자는, 당장 필요한 말만 하셨다고 했어요."
- 그럼, 유튜브 효과가 있는 건가 봐요?
"그렇죠.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영롱 님 스스로 깨달으신 것도 있고 댓글에 담긴 응원 덕분에 힘이 더욱 나실 테고요.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할머니도 좋아하시니까 계속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 이재관 씨는 직장까지 관두고 치매 환자인 아내를 돌보는 것 같은데 어떻다고 하나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아내를 돌보면 돌볼수록 치매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하셔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셨고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계시거든요. 촬영에 응하셨던 이유도 치매 환자를 돌볼 때 보호자의 돌봄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그 시작은 보호자가 치매를 받아들이고 내 가족이 치매 환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 녹음도 해서 자기가 잘못한 거 캐치해서 바꾸는 거 같아요.
"사실 저희도 몰랐어요. 재관님께서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새벽 등산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니까 재미있는 상상도 하시고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질문했는데 저도 놀랐던 거죠. 무슨 생각을 한다기보다 낮에 공부할 때 녹음한 걸 들으면서 혹시 치매 환자인 아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반성하고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신다는 게 신기하고, 감동이었어요."
- 일상적인 생활 하는 게 치매 환자에게 도움 되나 봐요?
"우리가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바로 상상되는 게 일상생활을 못 한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생각 때문에 갑자기 가족들이 바로 모든 걸 다 해주려고 하는 게 오히려 안 좋고 직접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오랫동안 그걸 할 수 있게 유지해 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해 타이핑 연습도 하게 하는데요. 이걸 해야 치매가 낫는다고 하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고 하면서 아내가 타이핑하게 해요. 아내 입장에서는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남편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존감도 높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 치매를 가족이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에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치매국가책임제로 여러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치매 가족 휴가제처럼 현실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에 그친 제도도 있고요. 그보다 더 문제인 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인 것 같아요. 막상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생겼을 때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더 알려야 해요.
반면 아무리 홍보해도 우리가 관심 가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도 맞아요. 치매가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거나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생겨도 알리지 않고 숨기는 것도 결국 선입견 문제고 인식 개선으로 연결되죠. 결국 국가가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제도 만드는 것에 더해 정보 접근성 높이고 인식을 개선하는 일에도 더욱 힘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입견 없는 수용적 태도
- 치매 환자 보호자 가족 모임인 '물망초'가 있는 거 같은데 모임 가보셨잖아요. 어때요?
"<치매 때문에 치매 덕분에>라는 대담집으로 처음 알게 돼서 갔는데요. '물망초' 가족들은 서로의 경조사에 다 참석할 정도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말씀하세요. 자조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주보호자이기 때문에 실제 가족보다도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감정적인 도움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자조 모임에는 유용한 정보도 더 많아요.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이 '내가 이걸 써보니까 좋더라' 하는 정보들을 서로 주고받기 때문에 실제로 무언가 필요할 때 물어보기에 가장 좋겠더라고요. 또 치매 환자마다 병이 진행되는 속도가 다르고 증상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다른 가족을 보면서 이런 치매 증상이 있을 수 있겠다는 걸 미리 생각해 볼 수 있고 준비할 수가 있는 거죠."
- 치매 환자 보호자가 어떤 마음 가지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재관님도 강조했던 게 가족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기관에서도 그래요. 가족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도움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도움받을 수 없어요. 가족들이 치매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에야 치매 환자가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 찾게 되는 거니까 보호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또 보호자가 스트레스 받고 괴로워하면 환자의 삶의 질도 함께 낮아지거든요. 그래서 보호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고 보호자도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해요."
- 제작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항상 제작하면서 느끼는 건 '나도 선입견이 정말 가득했구나. 관심이 있었던 나도 몰랐던 게 정말 많았구나'예요. 그래서 '내가 제일 몰라서, 내가 제일 부족해서 나부터 알자'라는 마음으로 취재를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시청자들과 제일 가까웠던 사람이고 시청자들에게 제일 가닿는 걸 만들 수 있다도 생각하죠. <다큐24>가 그런 프로그램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치매 간병을 미화하지 말아라'라는 댓글 예상했어요. 그런데 지금 댓글들은 치매 환자 가족으로서 공감해 주시고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됐다는 댓글이 많아요. 제가 따뜻하고 기분 좋은 모습들을 위주로 담은 것이 아프고 힘든 현실을 외면했다는 오해를 사고 누군가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돼요. 하지만 그동안 미디어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 모습 또한 현실이니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모든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외롭지 않고 조금은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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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