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들의 집"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아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외면하거나 부정하지만, 실은 너무나 뻔히 잘 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미래마저도.
취침시간, 이층침대로 빼곡한 침실에서 아이들은 수정구슬 놀이를 벌인다. 점을 봐준다며 아이가 아이에게 잔혹한 미래를 예언한다. 바로 앞서 풀이한 악순환 과정이다. 너는 술에 절어 살 테고 아이를 낳아 버릴 거라며,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 끝날 인생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냉소적인 아이들의 시선이 내비치는 장면이 또 있다. 정답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같지만 하필 그들이 보는 내용은 과연 저 아이들이 보는 세상의 색깔이 무엇일지 상상하기 싫게 만든다. 그들은 모두 함께 파멸을 맞는 '전갈과 개구리' 우화의 교훈이 '사람을 믿지 말라!'라며 공유한다. 대체 이 아이들은 무엇을 경험하며 살아온 걸까? 물론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그렇게 성장할 아이들은 자연히 타인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또래 집단 사이에서 올라서기 위해 '센 척' 하며 일탈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하지만 좀도둑질이나 흡연, 되바라진 말대꾸로 밉상이던 아이가 처한 조건, 어린 동생들을 지켜야 하는 절박함을 인지하게 된다면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거나 함부로 싹수가 노랗다며 매도할 수 있을까? 이미 전쟁 이전부터 미래를 꿈꾸기 힘든 정치 혼란과 경제난,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앓던 나라에서 아이들은 그저 몸만 어른이 되어갈 따름이다. '한 명의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하지만 영화 속 우크라이나 동부의 풍경은 그것과는 까마득히 동떨어져 있다. 결국 어른들의 책임이다. 물론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헌신적인 어른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엔 너무나 부족한 게 많다.
그렇게 계절이 흐른다. 영화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9개월을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한 명의 아이가 떠나면 또 한 명이 들어온다. 겨울이 되면, 전쟁이 악화될 수록 쉼터는 더 붐빈다. 그런 아이들을 위로하듯 '자장가'가 흘러나온다. 어디서 들어본 곡조다. 순간 쭈뼛 소름이 돋았다. 바로 구소련 시절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유리 노르슈테인의 대표작이던 <이야기 속의 이야기 Ска́зка ска́зок, Skazka skazok, Tale of Tales (1979)>에서 기억에 남은 슬라브 자장가였기 때문이다.
<작은 잿빛 늑대가 온다>는 이 자장가는 구소련권에서 보편적인 구전동요다. 그런데 곡조가 애조 띤 것과는 별개로 가사 내용은 퍽 살벌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말 안 들으면 호랑이가 물어간다!' 내용의 슬라브 버전 격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환상적인 분위기로 포장하지만 2차 대전을 포함해 당시 소련 민중이 겪었던 험난한 현대사를 은유하며 위로하던 정서를 지녔던 것처럼, 잿빛 늑대가 아이를 물어간다는 살풍경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파편들의 집> 아이들이 처한 상황 역시 세기가 변했는데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위험해진 셈이다. 그런 빈곤과 학대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선 전쟁이 끝나고,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재건되어야만 한다. 영화 속 아이들의 슬픈 눈빛을 기억한다면 그저 멀리 떨어진 외국의 불쌍한 아이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공허한 소리를 쉽게 내뱉긴 앞으로 어려울 테다. 이 영화는 그저 전쟁에 휩싸인 먼 나라에서 그곳 아이들이 겪는 수난으로 소비될 게 아니라 잔인한 사회학적 교재로 깊숙이 각인될 가치가 있다.
<작품정보>
파편들의 집 A House Made of Splinters
2022 | 덴마크 | 다큐멘터리
2024.07.24. 개봉 | 87분 | 12세 관람가
감독 시몬 레렝 빌몽
출연 에바, 사샤, 알리나, 콜랴
수입/배급 필름다빈
2022 38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감독상(미국)
2022 45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북유럽다큐멘터리 드래곤상(스웨덴)
2023 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 후보(미국)
2023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2023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국제장편경쟁
2023 20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아가페초이스
2024 12회 무주산골영화제
2024 18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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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