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어줘' 스틸컷
BIFAN
옆방 여자의 존재가 마음에 걸린다
곧이어 은우는 전날 들었던 녹취를 다시 듣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전날엔 녹취 속 다툼인 줄 알았던 대화가 녹취 안에 없는 것이다. 녹취 안에 담기지 않은 폭력적인 말들이 전날 밤 자신이 푼 녹취록 안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건 옆방에서 들려온 것이 아닌가. 그 대사는 좀처럼 그냥 넘기기엔 심각해 보이는 것이다. 은우는 집을 나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옆집 창문턱에 몰래 녹음기를 틀어 올려두기까지 한다.
은우의 반대쪽 옆집에 사는 할머니도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 보조기를 밀고 다니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은우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모양이다. 귀가 불편한 은우가 잠시 스피커로 녹취를 틀어 녹취록을 풀었는데, 그 과정에서 녹취 속 남녀의 다툼이 그대로 옆방에 흘러 나갔던 모양이다. 걱정이 된 할머니가 은우에게 다가서 그녀의 안전을 묻고, 혹여 그런 일이 더 있다면 제 집으로 건너오라 말하는 장면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말하자면 영화는 여성과 여성 사이 미약한 연대에 주목한다. 영화가 그리는 이 여성들의 연대 바깥은 냉정하고 무심하기 그지없다. 경찰은 그저 한 통의 전화에 실종신고가 됐던 여성의 안전을 직접 확인할 의무가 없다며 물러서고, 또 다른 사내들이란 녹취록 속에서, 옆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도 여성을 겁박하고 폭행할 뿐이다. 죄다 하나 같이 못되고 폭력적이며 파괴적인 인간들뿐이다. 여성들은 그 속에서 아주 희미한 연대로써 서로를 지키려 하니, 이 영화가 비추려 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