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버섯이 피어날 때>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마주할 때 약간의 경외심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 너무 멀리 지나와버린 탓일까 이제는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때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어서다. 분명히 지나온 시간이지만 마치 어딘가에 두고 온 분실물 같은 기억. 단편적인 사건의 장면도 이제는 몇 장 남지 않았으니, 그 시절의 기분이나 마음, 생각 같은 하나의 정경을 벗어난 부분은 더욱 흐릿하기만 하다. 그만큼 어떤 시절의 내면을 다시 불러오는 일은 어렵다. 단순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버섯이 피어날 때>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마음을 다시 상기시키게 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작품이다.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싶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기도 한 단순하고도 복잡한 아이의 마음이 잘 그려지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부분도 작품의 전반적인 환기를 균일하게 유지하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는 극 중 중심인물인 현서(최자운 분)가 단순히 이야기 속에 놓여 있는 어린아이로만 기능하지 않도록 만드는 부분도 있다.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이 들여다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02.
현서는 혼자 노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여러모로 눈치가 보이는 순간이 많다. 부모님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누나 민주(곽세영 분)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한 것 같다. 그 관심을 자신도 받고 싶지만 누나처럼 뭔가 배우게 해달라고 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 같다. 누나는 항상 짜증만 낸다. 같이 놀자는 말에도, 바이올린 연주를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도 자꾸 밀어내기만 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종종 눈치를 본다. 친구는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형이 곁에 있어서다.
이처럼 영화가 중심인물인 현서를 다루고 있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주변인으로 머문다. 어리지만 눈치가 늘 수밖에 없는 것도, 부당한 요구에도 일단 동참하고 보는 것도 모두 그래서다. 아직 어린 아이다. 행동에 대한 선악을 구분하기 전에 외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성정이 나빠서라고 보기는 힘들다. 친구 형과 함께 연필밥을 물에 적신 휴지로 뭉쳐 옥상 위에서 밑으로 던지던 날에 느끼던 죄책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