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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 없으면 어때? '병맛' 뮤지컬을 즐기는 법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웃음과 퍼포먼스로 무장, 6년만에 돌아온 뮤지컬 <이블데드>

24.07.11 14:29최종업데이트24.07.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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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공연되지 않았지만, <이블데드>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좀비 영화 <이블데드 1>과 <이블데드 2>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코믹 뮤지컬. 2008년 한국 초연 당시 류정한과 양준모, 그리고 현재 매체와 무대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조정석도 출연한 작품이다. 여기에 SNS에 가끔 뜨는 넘버 '황당해'하는 <이블데드>의 존재를 한 번씩 상기시켰다.

올 여름, 6년 만에 <이블데드>가 돌아왔다. 새로운, 그러나 탄탄한 캐스팅과 함께다. 장지후와 기세중, 그리고 < D.P. 시즌2 >에서 드랙퀸 탈영병 '장성민' 역을 맡아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 배나라가 '애쉬' 역에 캐스팅됐다. 애쉬의 절친 '스캇' 역에는 서동진과 조권이 분한다. 스캇의 여자친구 '셀리'와 고고학자 '애니'는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데, 린지와 안상은이 맡는다. 외에도 송나영, 정다예, 김지훈, 주민우, 김경목 등이 출연한다.

지난 6월 20일 개막한 <이블데드>는 오는 9월 1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인터파크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주식회사 랑
 
웃음 뒤에 따라온 의미 있는 고민

<이블데드>는 'B급 좀비 코믹 뮤지컬'을 표방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웃기려 한다. 'B급' 답게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도 소위 말하는 '병맛'이다. 관객을 터뜨리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면, 이 작품은 성공했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만족스럽지 않은 극일 수도 있다.

필자는 공연을 보며 '남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작품이 그려내는 사회 현실을 포착하고, 이로부터 사회적 의미를 끄집어내고, 작품과 사회의 관계를 정리하는 '사회학적 비평'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블데드>에 대한 사회학적 비평이 가능하겠는가 묻는다면 "쉽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동시에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하겠다. 공연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공연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연극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극장은 믿음을 갖는 데 도움을 준다. 물리적으로 구분된 극장 안과 밖은 공간이 공유하는 세계관도 다르다. 관객은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 연극적 세계에 들어왔다고 인식하고 믿어야 공연을 잘 즐길 수 있다.

극의 개연성은 관객이 연극적 세계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극장 외부의 현실 세계와 그 순간만큼은 단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블데드>는 개연성이 없다. 'B급 좀비 코믹 뮤지컬'을 표방한 순간부터 이를 선언한 셈이다.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주식회사 랑
 
1막 후반부에는 '제이크' 역의 배우가 관객들을 대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극장 안내 방송을 흉내 내고 "지금부터 인터미션(공연에서의 쉬는 시간)입니다"라며 관객을 속이기도 한다. 자신은 "'바비 조'라는 여인을 사랑하는데 그 여인은 이 뮤지컬에 등장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어떤 공연 제작자가 영화 두 편을 뮤지컬 한 편으로 합쳤다"며 아쉬워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객석에선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2막에선 좀비가 된 배우들이 객석에 내려와 피를 뿌리기도 한다. 전용 좌석에 앉아 우비를 입은 관객에게 피를 뿌리며 함께 즐긴다. 개연성이 없어도 관객들은 그저 즐기며 연극적 세계를 믿고 공유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궁금했다. 개연성이 없어도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연극적 세계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문득 관객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제이크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 연극적 세계에 대한 의심을 거두라는 말로, 단순히 믿어달라는 말로 해석하면 어떨까? 연극이란 배우가 만들어진 캐릭터를 약속대로 연기하는 '가짜'인데, 이를 두고 '진짜 같지 않다'며 의심하는 게 형용모순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웃기는 뮤지컬이지만, 필자에게는 공연을 즐기는 방식, 다시 말해 연극적 세계에 대한 믿음의 기원을 고민하게 했다. 이제 여러분의 답이 궁금해진다. <이블데드>를 보시는 분이라면 공연 내내 실컷 즐기시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나는 공연을 어떻게 즐기고 있나.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
뮤지컬 <이블데드> 공연사진주식회사 랑
 
공연 뮤지컬 이블데드 인터파크유니플렉스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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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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