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르>의 한 장면
티캐스트
치매 증세가 심해지면서 안느는 어린아이처럼 변한다. 밥을 거부하거나 물을 마시지 않겠다며 연신 뱉어대기도 한다. 조르주의 인내심도 점점 한계에 달한다. 요실금을 겪고 언어 능력까지 상실한 안느를 보며 언젠가부터 아내의 죽음보다 죽어가는 과정이 더 두려워진다.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그늘은 짙어진다. 매일을 감내하며 보내던 어느 날, 안느는 '아파'라는 말만 반복한다. 평소처럼 안느를 달래던 조르주는 마지막 선택을 감행한다. 그것은 안느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키는 것이었다. 짧고 강렬한 몸부림 뒤에 이어지는 장면과 함께 조르주가 그의 뒤를 따르는 듯한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평안한 노후에 병이 찾아들면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현실의 잔혹함을 냉철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노년에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어려워지면 활동 범위가 현저히 줄어드는데, 영화가 진행되는 120분 동안 거의 모든 일이 '집'에서만 벌어지는 것을 고려했을 때 병 든 노인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집 안팎이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자기 남편에 대한 딸의 푸념, 방문객들의 근황 같은 것은 더 이상 안느와 조르주가 속한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극중 인물이 피아노를 치거나 CD 플레이어를 재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 어떤 장면에서도 배경음이 나오지 않는 것 또한 이들이 처한 상황을 제3자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배경 음악은 영화 속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할 때 쓰이는데, 하네케 감독은 음악을 현실적으로 쓰는 것을 선호해 <아무르>에서는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느와 조르주의 상황을 관객으로 하여금 냉철한 눈으로 관찰하게 하는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은 놀랍게도 무음으로 올라가는 엔딩크레딧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감독은 정적인 상황에서 묻는다. 영화는 끝났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고.
애틋함에서 애처로움으로, 끝내 공허함으로 마무리되는 조르주의 눈빛이 떠오른다. 눈빛이 변해가는 과정을 돌이켜보니 안느를 물심양면으로 돌봤던 그의 사랑들이, 생의 문턱을 오가는 아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무력한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하지 못했던 뒷모습이 마음을 파고든다. 끝내 공허한 눈으로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던 그의 무거운 결정에 나는 한숨만 더할 뿐이다.
그의 행동이 사랑인지 이기심인지 자문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조르주가 처한 상황은 조르주만이 이해할 수 있으므로, 제삼자가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나는 윤리를 배반한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물리적인 보살핌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안느를 향한 눈빛에서부터 그의 존엄을 위한 최후의 결정까지 사랑의 범위에 들일 수 있다면, 이것은 사랑을 초월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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