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최근 급격히 증가중인 2030세대의 쓰레기집의 특징은, 노년층의 저장장애처럼 한 가지 이유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장장애 외에도 우울증, 번아웃,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겨난다.
30대 여성 박소희씨(가명)는 본래 소아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소희씨는 자신이 일하던 센터에서 한 유명 물리치료사의 강의에 시범조교로 참여했다가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소희씨는 이후 직장을 퇴사하고 해당 남성을 성추행으로 신고했지만, 정작 경찰은 무혐의로 불송치 판정을 내렸다. 뒤늦게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동료 물리치료사들의 탄원서가 이어지자 검찰은 지난해 3월 재수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소희씨는 이 사건으로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다. 새 직장에서는 남들처럼 밝게 일하는 척 했지만 자신의 상처를 감췄지만, 집안에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중생활을 이어가야했다. 소희씨는 "내 인생은 여기에서 끝났다. 나는 이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공통적인 것은 우울감을 다 바닥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울증이나 ADHD 등은 결과적이다. 결국 본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청년층에서 쓰레기집에 사는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들은 눈에 잘 띄어서 발견되기 쉬운 반면, 청년층의 쓰레기집은 한번 문을 닫고 나오면 음지에 있어서 발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저장장애가 인지결함이나 뇌에서의 이상이라면, 젊은 층의 쓰레기집은 내면에 우울감이나 커다란 외상, 집중력 부족, 의사결정의 어려움같은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첫 번째 참가자로 가장 먼저 자신의 쓰레기집을 용기있게 공개했던 이하나씨의 숨은 사연이 밝혀졌다. 긴 망설임 끝에 하나씨는 오랜 지인으로부터 끔찍한 성폭력을 당했던 사실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차마 누구에게도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그녀는 신고를 한 이후에도 수사와 재판 과정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했다고 한다.
하나씨는 어렵게 방송에 출연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 이제는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이 방송출연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이런 시도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쓰레기집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게으르다'라는 말 한마디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청소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소하면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물건으로 '우울증 약'과 '유서'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쓰레기집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조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다가 쓸쓸하게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독사로 발견된 현장의 90% 이상은 쓰레기집이라고.
고립은둔청년 지원단체를 운영하는 류승규 대표는 청년층 쓰레기집 문제가 "결국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청년들의 쓰레기집 증가는 결국 그들이 고립되었음을 의미하는 '위기의 신호'라는 것이다.
본인도 한때 쓰레기집에 거주하며 방황했기에 누구보다 청년들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류 대표는 "본인들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보여줄 수 없고 나가지 못해 (쓰레기가) 쌓였을 뿐"이라고 설명하며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20대로 우울증을 진단받은 환자의 숫자는 약 4.7만에 18.5만으로 400% 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한 고립은둔 청년들의 상당수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과도 교류가 없이 단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람들의 70%는 여성인 것으로 드러나 남성의 약 2.6배에 달했다.
전문가는 "SNS 등으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나를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진 것 같지만, 거기서 생기는 상대적 격차와 열등감 때문에 오히려 10, 20대부터 벌써 내가 외롭다. 사회적으로 단절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결핍
한국보다 먼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툴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일본에서는, 정부가 2012년 '고독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법안 입안과 고독-고립대책 담당실등을 발족하면서 국가차원에서의 대응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2018년 '고독부'를 신설하면서 고독을 더이상 개인의 차원이 아닌, 흡연이나 비만처럼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영국은 노년층의 고립만이 아니라 청년층의 고립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전문가들은 "쓰레기집을 치워주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내가 다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단순한 '비움'을 넘어서, 그 다음에는 빈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채움'의 과정도 필요하다.
오랜만에 쓰레기집을 깨끗이 정리한 지안씨는 "노력하는 것에 의미조차 없다고 오늘 청소하고 나니까 이유가 조금씩 보이는 것도 같다. 아직은 (살아가야할 희망을) 찾기 위하여 좀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국내의 고립은둔 청년인구는 약 5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창 진학과 취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코로나19 펜데믹 등의 악재를 겪었던 현 2030세대는 '잃어버린 세대'로도 불린다.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기회'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겐 잃어버린 시작의 기회, 사라져버린 변화의 기회, 그리고 처음부터 갖기 힘들었던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들까지. 그리고 이는 사람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결핍의 잔해'들이 청년들의 고독한 작은 집안을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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