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원> 포스터 극장에서 찍은 연극 입간판.
편성준
88 서울올림픽 준비 열기로 가득한 1987년의 부산 시내.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방송국 여성 리포터가 카메라 앞에 서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인터뷰한다. "올림픽이 열리게 된 대한민국,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네. 우리나라 국민들, 정말 대단하지요. 그런데 왜 정부는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킵니까?!" 당황한 리포터가 마이크를 빼앗아 카메라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네. 일반 시민인 줄 알았는데 불량시민이었습니다." 이번엔 지나가던 대학생을 인터뷰한다. 공부만 하게 생긴 그 남학생은 가슴에서 불온 유인물을 꺼내 길거리에 뿌리며 외친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아, 네. 일반 학생인 줄 알았더니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리포터는 죽을 맛이 된다. 유쾌한 반전이다.
'명랑 정치 스포츠 연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초선의원>을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보았다. 2022년 초연 이후 세 번째 관람이다. 처음 볼 때 너무 재밌어서 연거푸 두 번을 관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극작가 오세혁과 연출가 변영진을 이 연극으로 처음 만났다. 오세혁 작가는 우리에게 '신념을 꺾지 않고 정의롭게 살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대통령 노무현의 초선의원 시절만 따로 떼어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덕분에 비극의 기운이 없는 힘찬 연극이 탄생했다.
변호사로 일하며 억울한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을 돕던 최수호는 어렵게 국회의원이 되어 패기 넘치는 의원 생활을 시작하고 길거리 인터뷰 때 만났던 대학생 이명제는 감방에 다녀온 뒤 보좌관이 되어 최수호를 돕는다. 그러나 막상 들어간 국회는 끼리끼리의 당파 결성과 치사한 이합집산이 판치는 정글이었고 국회의원들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였다. 그 와중에 선거와 정치가들의 싸움을 올림픽 종목인 달리기, 양궁, 탁구 등으로 표현한 장면들은 아이디어가 넘치고 배우들의 악에 받친 연기에 힘입어 배꼽을 잡을 정도로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