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스틸컷
쇼박스
단서들이 지목하는 인물... 왜 그였을까?
여기까지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국시대 무장의 갑주차림을 한 정령은 화림을 공격한다. 이를 막으려던 봉길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 화림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는데, 겨우 피한 곳이 절 마당에 있는 승탑들 사이였던 덕이다. 정령이 승탑을 알아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불교 경전을 외워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다시 정령은 화림과 마주한다. 화림은 정령이 좋아한다고 밝힌 은어를 땅바닥에 늘어놓는 방식으로 제가 원하는 장소까지 유인한다. 은어는 그저 물고기가 아니다. 전국시대 기후성의 특산물로 유력 다이묘에게 바쳐지던 귀한 생선이었다. 현재도 기후시에서 많이 잡히는 이 은어를 특별히 좋아하던 이들이 있었다. 기후에서 전국을 도모한 영주 오다 노부나가, 또 그 뒤를 이었다 해도 좋을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시 그의 심복인 이시다 미츠나리가 그들이다. 미츠나리 휘하 제일가는 장수였던 시마 사콘과 단 하나의 먹거리를 엮는다면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은어일 테다.
영화는 정령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죽은 이로, 사라진 목에 칼을 박아 넣어 육신 자체를 하나의 혈침으로 만들어 문제가 된 묫자리에 묻었다고 소개한다. 만 명을 베었을 만큼 걸출했단 무장이며, 다이묘로 불린다는 단서를 더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후보는 추려질 밖에 없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사망한 장수, 심지어 그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인물, 그런 이는 정말이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없었다면 좋으련만 이러한 단서는 한 인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시마 사콘이다.
그 죽음이 명확하지 않아서인지 그에겐 많은 설화가 있다. 불교에도 깊은 관심이 있어 절의 승려로 은둔해 생을 마쳤다는 등의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금강경을 줄줄 외고 승탑을 보고 멈추는 등의 모습 또한 그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여러모로 영화 속 정령은 실제 역사 속 인물과 상당부분 맞아떨어진다. 조선의 정기를 끊는 쇠말뚝, 그 말뚝의 역할을 대신하는 죽은 육신을 보며 실재했던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는 건 얼마나 불쾌하고 부적절한 일인가.
백보 양보하여 전국시대 무장 가운데 왜란에 책임이 있는 여러 인물을 놓아두고 왜 하필 시마 사콘인가. 어째서 그를 지목하게 하는 설정들이 그토록 중첩돼 있는 것인가. 전국시대 가운데서도 걸출한 무력을 지닌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것 말고는 필연적인 등장의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데 말이다.
▲파묘스틸컷
쇼박스
일본에 대한 묘사, 지나치지 않았을까?
거슬리는 점은 이뿐이 아니다. 수차례 등장하는 '한국 귀신과 달리 일본 정령은 원한 없이도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해한다'는 류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일본귀신이 한국귀신에 비해 더 악독하다는 인식은 대체 얼마만큼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가.
글 초장에 적은 것처럼 일본이 같은 방식으로 이 땅의 인물을 원귀처럼 묘사하는 영화를 찍는다면 적잖이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불행히도 이제 나는 실재했던 인물을 거듭 떠올리게 되는 귀신이 나오는, 그것도 그와 '쇠말뚝 박기' 같은 비열하고 조잡한 일을 엮어놓은 영화가 한국에서 큰 호응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우리가 싫은 것은 남 또한 싫은 것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으로부터 저들의 가해와 우리의 저항을 나누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이다. 침탈은 비판받아야 하며 저항은 존중돼 마땅하다.
그러나 영화는 저항을 넘어 불필요한 모독과 모욕으로까지 흘러간다. 삶의 무대를 넘어 죽음 뒤, 민속신앙의 영역에서까지 국적을 나누고 호오를 가른다. 판타지 오컬트이므로 어떠한 근거 또한 제시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좋은 것일까.
나는 모두가 축하를 전하는 잔치 뒤에 그저 한 마디를 남기고 싶을 뿐이다. 진정으로 자긍심 있는 이는 남을 모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영화는, 한국문화는, 한국의 창작자와 시민들은 마땅히 그럴 때가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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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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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천만영화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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