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스틸컷
SK 텔레콤
동서로 갈린 정국, 혼탁한 국왕
때는 바야흐로 16세기 말이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적통으로 이어져온 이씨 왕조가 명종에서 끊기고, 서출인 선조로 왕위가 이어진 지 어언 22년째다. 왕권 중심 국가인 조선에서 혈통은 주요한 요소였고 이와 연계해 서인과 동인으로 나뉜 파벌의 폐해 또한 심각해지며 조선은 정쟁과 숙청이 거듭되는 혼란기로 접어든다. 정쟁이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면, 오로지 제가 속한 파벌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료들의 정책적 입장이 달라질 정도다. 일본이 호시탐탐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던 시기, 조선에서 파견한 사절단조차 당파에 따라 국왕에게 보고를 달리할 만큼 조선 내 갈등은 심각했다.
영화가 그대로 담고 있는 바,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은 전쟁 가능성을 제기한 황윤길과 달리 전쟁의 가능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후에 류성룡이 고의로 황윤길과 다른 입장을 말한 것을 지적하며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느냐 묻자 김성일은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이라고 변명한다. 영화는 그의 이 같은 대사를 그대로 담아내며 조선의 정치가 국가와 왕, 백성을 돌보지 않고 정쟁에 치중해 있음을 드러낸다.
조선의 무능함은 영화 내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김창완은 특유의 연기로 비열하기까지 한 국왕의 모습을 펼쳐낸다. 제게 반하는 모습을 참아내지 못하고 한 번 수틀리면 그 끝이 길게 남는 지도자, 그리하여 신하들이 오로지 저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한 정국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권력자의 모습을 시대의 단면으로 읽어낸 것이다.
영화는 오로지 제 권위를 유지하는데 급급하여 갈라선 신하들의 갈등을 이용해 키우기까지 하는 무능력함을 우스꽝스러울 만큼 풍자하여 묘사한다. 이를테면 '육지는 권율, 바다는 이순신'을 요구하는 동인들과 '육지는 신립, 바다는 원균'을 주장한 서인 사이에서 '육지는 신립, 바다는 이순신'을 채택하는 식이다. 장수의 실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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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조선조와 오늘의 한국
뿐만 아니다. 영화는 정여립 모반사건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무능력한 조정을 갈아엎으려는 이들의 작당모의에 주목하고, 조선이 이를 수습할 역량이 없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그리하여 상륙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이 수도인 한양에 입성한 뒤 실제 역사와 달리 대동계 구성원들과 경복궁에서 일전을 펼치는 모습을 집중하여 잡아낸다. 이몽학과 견자가 궁 안에서 얽힌 관계를 청산하는 대결을 펼치는 것과 한편으로 왜군과 대동계의 싸움을 배치한 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해도 좋겠다.
조선은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독자적으로 천문을 읽어낸 몇 안 되는 나라였다. 그로부터 저만의 달력을 만들어 보급했고, 조선의 독자적인 시간을 가질 만큼 주체성 있는 국가였다. 또한 독자적인 언어인 한글을 창제해 일부나마 사용해 그 저변을 넓혀갔다. 그밖에 화약무기를 개발해 사용했으며 유학을 발전시켜 사회에 뜻 있는 선비들을 양성해 적극 정치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이순신과 같은 구국의 영웅 또한 조선이란 국가가 길러낸 측면이 크다.
그러나 그 이면엔 파벌싸움으로 얼룩진 혼란한 정국과 적자와 서자를 구분해 따지는 고루한 문화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선비를 고작 당파싸움으로 죽여가며 갈등을 키웠고 혼탁한 국왕과 무능한 정치가 나라를 혼란케 했다. 그리하여 선조 이후 조선은 쇠락을 거듭하게 된다.
이준익 감독이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채택해 영화화한 것도 이러한 것이었던 듯 보인다. 장편만화를 두 시간짜리 영화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서사를 크게 덜어낸 것이 패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덜어내려 하지 않았던 조선의 민낯은 그가 진정으로 보이고 싶었던 풍경이었던 것이 아닐까. 당파로 갈라져 국민을 바라보지 않는 정치, 정책은 내팽개치고 권력만 바라보는 정치가며 관료들 같은 모습 말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에 주목한다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되짚어 볼 구석 없는 졸작으로만 이해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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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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