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라 가능한 수위와 미장센으로 한계 없는 충격을 선사한다. 아이의 마음 즉, 벨라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파란만장한 벨라의 인생에 총 다섯 명의 남성이 필요했다.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갓윈, 플라토닉 사랑이자 선생님 맥스, 육체적 쾌락의 촉매제 덩컨, 세상의 이면을 알려준 냉철한 친구 해리, 폭력과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법을 깨닫는 전 남편 알프레드다.
남성들은 한결같이 미성숙한 여성을 두고 가르침을 주겠다면 설레발치지만 벨라는 그때마다 통쾌하게 대응한다. 이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변주 그리스신화에서 영감받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의 재해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괴물 이름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알고 있지만 사실 과학자(창조주)의 이름이며 괴물은 이름조차 없이 버려진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름답다는 말에서 파생된 '벨라(Bella)'라는 이름을 얻어 한없이 예쁨 받는 존재로 승격되었다. <피그말리온>은 남성 음성학자가 혼신의 언어 교정 프로젝트를 벌여 시골뜨기 말괄량이 여성을 상류층의 말투와 예절을 갖춘 귀족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얻어진 계급도 교육과 환경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의도된 설정이다. 무미건조한 흑백 화면에서 화려한 총천연색 화면으로의 전환, 인공적이고 초현실적인 미장센과 과장된 의상, 어안렌즈의 관음적 시선이 내내 불쾌지수를 높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망원렌즈의 뚜렷한 시선을 빌어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순수한 본능과 합리적 이성의 시너지다.
141분 동안 정신없이 이끌려 가다 보면 정작 가여운 인물은 누구일지 곱씹게 된다. 벨라가 세상을 변하게 만든 촉매제가 되었듯이 AI가 만든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 상황과 겹쳐 기시감이 들었다. 닥치는 대로 습득해 딥러닝 하는 AI와 벨라는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공상과 망상,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괴상한 에너지에 전염된 하루였다. 비단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허구가 아닌 21세기 현실에도 여전히 가여운 것들은 생겨난다는 섬뜩한 경고처럼 들렸다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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