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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역사의 재현이어야 할까, 중국 사극이 던진 메시지

[김성호의 씨네만세 646] BTV <옹정황제의 여인>

24.02.14 12:05최종업데이트24.02.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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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한국에선 성공한 사극이 역사왜곡 논란과 자주 마주한다. 사극이 반영한 사건이며 극중 인물이 실제와 달리 묘사됐다고 작품성을 문제 삼는 일이다. 근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논란이 따라붙어 화제가 됐다. 실제 역사가 어떠했는지 알리는 걸 넘어 작품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평가 자체를 절하하는 모습이 언론지상에서까지 심심찮게 발견됐다. 작품 머리에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창작극임을 명시하는 웃지 못 할 자막이 따라붙는 건 어느덧 한국 사극의 특색이 되었다 해도 좋겠다.
 
그러나 창작극이 역사를 자유롭게 소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부터 수많은 극작가들이 지나간 역사를 기틀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명군이 암군이 되거나 암군이 명군으로 재해석되는 사례도 적잖았고, 수시로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중요한 이야기가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각 있는 대중들은 작품을 역사와 혼동하지 않았다.
 
서양 뿐 아니다. 한국에 비해 창작자의 자유가 약하다고 평가되곤 하는 중국에서조차 사극으로 역사를 비틀어보는 자유가 폭넓게 보장된다. 왜 아닐까. 어디까지나 창작물인 극이 역사를 훼손할 수 있을 만큼 사회의 수준이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는 오늘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해석되고 평가될 때 더 나은 담론에 이를 수 있다는 합의가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옹정황제의 여인 포스터 ⓒ BTV

 
사극이 이끄는 중국 드라마 전성시대
 
<옹정황제의 여인>은 중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일찍이 <황제의 딸>과 <삼국지> 시리즈가 거둔 커다란 성공으로 한국에서도 중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들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중국 내에서 기록할 만한 인기를 구가하며 한국에서도 수입돼 방영됐다. 현재까지도 국내 거의 모든 OTT 서비스가 방영하고 있을 만큼 중국 대표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은 섬세한 로맨스 묘사로 큰 인기를 얻은 <후궁견환전>이라는 소설을 극화한 사극이다.
 
중국 BTV에서 76부작 드라마로 제작된 드라마는 한국제목인 <옹정황제의 여인>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청나라 옹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 역사로 치면 조선 영조 집권 초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초가 배경으로, 아버지인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와 함께 청나라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제왕의 치세기를 다룬다.
 
그러나 드라마는 옹정제의 정치, 즉 나랏일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금성이란 궁궐 안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이다. 수십 명의 처첩을 둔 황제의 여인으로 궁궐에 들어와 살아가야 하는 여인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수많은 궁인들의 삶, 그 속에서 피고 지는 마음들이 드라마를 이끄는 주된 동력이 된다. 즉 사랑과 우정, 신의와 배신, 욕망과 질투 따위의 것들이다. 당대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삶이란 점에서 수많은 계교가 세워지고 암투가 이뤄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처럼 보인다. 즉 드라마는 그 같은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미덕과 악덕을 내보이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후궁으로 들여져 마침내 태후의 자리에 오르는 견환(쑨리 분)이다. 순결하고 참했던 여인이 수많은 고난을 거치며 단단하고 강해지는 모습이 드라마의 중심되는 줄기라 할 것이다. 조정 관료의 딸로 태어나 수녀 간택에서 상재란 직위에 봉해지며 궁에 들고 타고난 미모와 지혜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그러나 그를 질시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말로 못할 고난을 겪게 된다.
 

▲ 옹정황제의 여인 스틸컷 ⓒ BTV

 
역사는 뼈대만, 창작으로 주도하는
 
76부작에 이르는 방대한 줄거리 가운데서 견환을 노리는 것은 처음엔 화비 연세란(장흔 분)이다. 당대 청나라의 제일가는 장수 연갱요의 여동생인 그녀는 타고난 미모에도, 표독스런 성품으로 주변을 괴롭게 한다. 그러나 황제조차 어찌할 수 없는 권신의 동생이란 점에 더하여 상당한 총애를 받고 있기에 주변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옹정제에 의해 연갱요를 비롯한 권신들이 줄줄이 숙청당하는 모습, 당대 청나라를 위협한 강국 준가르와의 갈등 등 역사의 큰 줄기를 후궁들의 암투며 견환의 성장과 같은 주요 이야기와 적절히 버무린다. 그 과정에서 일중독자라 해도 좋을 옹정제의 성실함과 누구도 믿지 못하는 냉혈한에 가까운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겪었던 심각한 암투와 음모가 역사적 근거가 전무한 창작이고,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도 상당수가 창조된 인물인 것이다. 즉 큰 줄기에서 작품은 역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드라마의 극적 긴장과 재미를 살려내기 위하여 없는 이야기를 만들거나 황제를 포함한 여러 역사적 인물의 성격을 실제보다 못하게 묘사한다.
 
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 중 한 명을 냉혈한 소인배처럼 보이게 하는 대목도 적잖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혹자는 이를 만주족인 황제가 오늘날 한인들과 민족적 정체성을 달리하기 때문이라 평하기도 하지만, 청을 중국역사가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드라마는 드라마로, 역사는 역사로 구분하여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시각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는 게 옳을 것이다.
 

▲ 옹정황제의 여인 스틸컷 ⓒ BTV

 
역사의 재현 넘어 시대적 메시지 담아내
 
오히려 드라마는 당대의 문화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흥미롭게 해석하는 솜씨를 내보여 관객을 감탄케 한다. 그중 하나는 왕자로 태어나 황제로 살아가며 인간성을 잃어버릴 밖에 없는 군주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는 점이다. 일례로 바깥에서 살아가며 아랫사람들과도 가까이 어울려온 후궁이 제 수하 하인들을 꾸짖는 것을 본 옹정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랫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열을 낼 필요가 없다, 그저 끌고 나가 후미진 곳에서 베어버리면 그 뿐'이라고 말이다.
 
황제와 귀족, 오로지 그들을 위해 존재하며 그들의 기분을 거스를까 전전긍긍하는 하인들의 모습은 이후에도 드라마 전반을 관통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다른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군주와 귀족의 한계로, 그로부터 비틀리는 여러 삶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옮겨가게 된다. 즉 전과는 비할 바 없이 평등해져 적어도 개인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오늘의 세상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옹정황제의 여인>은 과거의 역사를 재료로 삼아 오늘에 통용되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낸 중국 드라마의 역작이다. 전성기를 구가한 황제라 해서 그저 신성불가침의 군주로만 묘사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극화되며 평가될 수 있음을 내보였단 점에서 용감한 작품이기도 하다.
 

▲ 옹정황제의 여인 스틸컷 ⓒ BTV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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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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