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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고요?

[리뷰] 연극 <아모르 파티>

24.02.12 11:33최종업데이트24.02.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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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 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노래의 시작이다. 경쾌한 트로트 전주곡이 나오면서 현란한 의상의 무희들이 춤을 춘다. 곧이어 등장하는 김연자의 옷차림과 동작은 무희보다 더하다. TV화면이 들썩이는 듯하다. 여기까지 보면 파티(Party)에 온 듯하다. 아모르 파티를 '파티를 사랑하다' 쯤으로 오인할 만하다. 예상과는 달리,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다'라는 의미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인데, 원어는 'Amor fati' 영어로는 'Love of fate'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 내지는 인생관이자 운명관이라고 볼 수 있다. 
 

연극 <아모르 파티> 서울 혜화동 '대학로 올래홀'에서 2024. 02. 18까지 공연 ⓒ (주)이수엔터테인먼트

설날 연휴에 서울 혜화동 '대학로 올래홀'에서 연극 <아모르 파티>를 보았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김연자의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무대장치가 초라하고 어둡다. 낡은 집, 문 앞에 놓인 연탄재, 전봇대 기둥에 나붙은 떼려다 만 전단지, 허술한 우편함, 그리고 각종 폐지를 모아놓는 쓰레기통. 어느 것 하나 번듯하지 못하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내려온 늙은 남자, 부인도 죽고 자식도 죽고 혼자 산다. 문맹이다. 낡은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늙은 여자. 어린 나이에 시집와보니 전처가 아들을 남겨 놓고 집을 나갔다. 친자식처럼 키웠고 미국의 교수까지 시켜놓았는데 결국은 친모를 찾아갔다. 지금은 한국에서 홀로 셋방살이하며 산다. 두 청춘 남녀는 또 어떤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늦은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거리에서 장갑과 양말 등을 파는 보따리 장사 청년은 또 어떻고!
 

연극 '아모르 파티' 무대장치 ⓒ 강지영

 
무대장치나 옷차림은 호졸근하고 궁상스러우나, 배우의 표정은 밝고 몸짓은 발랄하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쓸쓸해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서로 대화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을 잃지 않았다. 15년 지기 청춘남녀의 사랑. 고백의 타이밍을 자꾸 놓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도 젊은이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만나면 설레고 또 만나면 손잡고 싶다. 서로의 상처에 대한 연민도 가득하다.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 더욱 애틋하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백할 기회를 놓치고 여자 노인은 미국의 아들에게로 간다. 그렇다고 남자 노인은 좌절하지 않는다. 그녀의 행복을 빈다. 이렇듯 연극은 아름답고도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쩐지 낯설다. 요즘 같지 않다. 왜 그럴까.

생경한 사랑의 풍경, 그 이유를 심리학자 김태형의 책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서 찾았다. 책의 부제가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해 사람들이 '진짜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저자는 말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사회, 인간의 가치마저도 '몸값'으로 치부되는 냉혹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또한 가짜 사랑을 부추기는 사회로 전락시켰다. 사랑으로 맺어져야 할 결혼마저도 '결혼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고 거래되기도 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우리 한국 사회를 덮고 있는 모든 것이 경제관념 속에 갇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물신숭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연극 속 두 쌍의 사랑 얘기가 서먹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보았다. <추적 60분>에서 만든 사주와 운명에 관한 탐사보도다. 극심한 산고를 치른 산모가 출혈이 심하여 출산 후에도 늘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못한 어머니가 쌍둥이를 돌보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집안 형편도 좋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쌍둥이의 아버지는 쌍둥이 중 한 명을 경찰서 앞에다 몰래 데려다 놓았다. 보육원의 수녀님이 그 아이를 거두었고 후에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극진한 양부모의 사랑으로 잘 자라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다. 한국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자라서 무당이 되었다. 쌍둥이가 태어난 연월일시가 같다. 사주(四柱)가 같음에도 40년의 세월 동안, 삶의 양태가 크게 달라졌다. 이 사례는 타고난 운명도 바뀔 수 있음을 증명한다.

운명은 숙명과는 다르다. 둘 다 인간이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공통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차이점이 드러난다. 운명(運命)의 한자를 눈여겨보면, 운수(命)를 옮긴다(運).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고난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살면서 느끼는 역경과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반면에 숙명(宿命)의 한자를 분석해 보면, 운수(命)가 잠을 잔다(宿). 자고 있으니 운수를 바꿀 수 없다. 인생을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부정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숙명으로 여길 것인가, 운명으로 여길 것인가. 

시인 장석주는 시 '대추 한 알'에서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지거나 저절로 둥글어진 게 아니라고 했다. 태풍과 천둥과 벼락으로 붉어졌고,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로 둥글어졌다고 노래한다. 신경림 시인은 또 어떠한가. 그의 시 '갈대'에서, 어느 날 밤에 연약한 줄기를 가진 갈대가 흔들렸다. 갈대를 흔든 것은 달밤도 바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조용한 갈대의 울음이라고 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인간의 인내가 상상되는 대목이다. 밤새 인생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시인을 더 만나보자.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피는 아름다운 꽃을 예찬했다.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며, 비에 젖지 않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흔들리지 않는 삶(사랑)은 없고, 젖지 않는 삶(사랑)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은 고난을 맞닥뜨리고 극복해 나가며 살아간다.

나에게 일어났거나 일어날 일은 모두 '내 운명'이다. 불운도 나의 것이요, 행운도 나의 것이다. 인생에 어찌 불운만 있을 것이며, 어찌 행운만 있으랴. 불운에 대비해 극복할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불운이 다쳐올 때 용기를 발휘하고, 행운이 다가올 때 겸손해야 한다. 한두 가지 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꿋꿋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모르 파티, 내 운명을 사랑하자. 내 인생과 나 자신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자.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 중복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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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일상에서 경험한 것을 글로써 소통하고 싶습니다. 글이 행복한 삶의 마중물임을 믿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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