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스틸컷
영화사 진진
로치는 어떻게 영국인과 난민이, 흑과 백이,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그가 작품을 통해 격파해야 할 적, 즉 증오로부터 시작한다.
영국 어느 쇠락한 마을이다. 그 마을에 버스 한 대가 들어선다. 버스에 탄 이는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이다. 아랍의 봄 이후 급변한 정세 가운데 내전이 발발하여 무려 10년 넘게 전란에 휩싸인 시리아다. 사회주의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이라크 난민 유입으로 인한 불안, 지정학적 가치가 큰 탓에 서방은 물론 러시아와 이스라엘 등 각국이 개입한 내전이 끝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난민과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매년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의 난민이 발생한 가운데, 영국 또한 일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영국 또한 난민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전란으로 터전을 잃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가뜩이나 쇠락한 동네에 난민까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삶의 질 또한 낮아질 거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저열한 문화를 불러오게 마련,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일어나 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학교 설립이며 예멘 난민 수용 등에서 비슷한 문제가 수없이 있었던 것인데, 저기 영국에서도 얼마 다르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민을 수용하기로 한 결정은 런던의 위정자들이 한 것인데, 실제로 난민이 들어오는 곳은 폐광돼 먹거리마저 사라진 탄광마을이 아닌가. 이곳 아이들도 좋은 옷이며 먹거리, 장난감 따위가 없이 사는 것이 보통인데 난민 아이들에겐 기부된 물품까지 주어지니 역차별이란 인식까지 더해질 밖에 없다. 가난한 백인들이 처량한 난민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니 이 마을의 긴장이 점차 높아만 진다.
쇠락한 마을과 나라 잃은 사람들
▲나의 올드 오크스틸컷
영화사 진진
쇠락한 마을은 공간조차 사라진다. 신도가 없는 예배당은 떠나가고, 마을회관 또한 문을 닫는 것이다. 겨우 남은 곳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술집 '올드 오크'다. 이곳의 주인장은 대대로 탄광 광부로 일한 집에서 태어나 갓 광부가 되었으나 탄광이 문을 닫으며 술집운영에 전념하게 된 TJ(데이브 터너 분)다. 워낙 가난한 마을이라 술집을 찾는 이들도 갈수록 줄어만 가는 가운데, 그나마 오래된 주정뱅이들만이 단골 고객으로 술집 경영에 보탬이 된다.
그러던 중 마을에 난민이 들어오니 주정뱅이들의 술자리도 한층 가열차 진다. 마을의 품격을 낮추는 중동 난민들이 어서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이들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이들이 마을에 이슬람 문화를 퍼뜨릴 거라고 공격적 발언을 일삼는다. 자연히 난민들 또한 마을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마을은 두 패로 갈라지기에 이른다.
이 같은 흐름에 문제를 느끼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난민을 돕는 봉사자들과 TJ, 사진작가가 꿈인 시리아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 분)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폐광 뒤 문을 걸어 잠근 지 20년이 된 올드오크의 뒷방을 수리해 마을 공동체가 함께 하는 사업들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아무 조건 없이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대화할 수 있도록 음식과 장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렇다고 일방적 자선사업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복원과 번영을 위한 사업으로, 난민 뿐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의 행사로 자리를 잡아간다.
영화는 난민을 밀어내는 이들과 난민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빚어내는 몇 주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난민을 밀어내는 이들이 그저 혐오자로만 그려지지 않고, 그들의 버겁고 쇠락해가는 주변 상황 또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이들의 방해 속에서 어떻게든 마을 공동체 사업을 일으키는 이들의 노력과 그 사업이 가져오는 변화 또한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로부터 이 쇠락한 마을에 약간의 온기가 돌기까지의 모습이 이 영화가 집중한 뼈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쉬움 속에도 진심이 가득하다
▲나의 올드 오크스틸컷
영화사 진진
로치의 오랜 팬으로서 이 영화에 호평을 내리고 싶지만 꼭 그럴 수만은 없음이 아쉽다. 영화는 적잖은 부분에서 단점을 지닌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난민에 대한 입장을 두고 갈린 사람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그려진다거나, 난민에게 손을 내미는 TJ의 드라마를 극화시키는 과정이 다소 성급하게 그려져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그렇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와 그 결말로의 연결부 또한 누군가의 죽음과 그로부터 생겨난 화합이라는 도덕적 감상주의 정도에 머물고 만다.
더없이 훌륭한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자유로운 세계>에서 보여준 처절하고 날카로운 시대에 대한 해석 대신 도덕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당위적 인간애에 호소하는 로치의 모습에서 그가 늙었고, 그의 영화는 낡아버렸다는 반대자들의 비판에도 약간의 이유는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로치는 여전히 로치이며, 그의 영화는 범작일지라도 거장의 범작임을 알게 한다. 도식적인 전개와 도덕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것도 진심 어린 작가의 필치로. TJ는 제 밥벌이에 닥쳐올 위협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 사실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좋았겠으나, 어찌되었든 공동체와 난민들을 위해 일을 시작한다. 그 일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귀중한 효과를 일으킨다. 사람들의 변화는, 물론 더 자연스럽게 그려졌다면 좋았겠으나, 있을 법한 방식으로 이뤄지며 그로부터 마을은 전보다 나은 문화를 갖게 된다.
진심 어린 노력과 진실한 마음들이 곳곳에서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슬람 사원 앞에서 돼지머리를 잘라 두고 고사를 지내는 천박함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세상이다. 영국 어느 쇠락한 마을의 이야기 가운데서 결혼도 출산도 않아서 몰락이 예정된 나라의 희망을 탐색하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노장이 불굴의 정신으로 지켜온 희망에의 갈구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희망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기를, 로치의 영화를 아껴온 나는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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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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