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 쇼포스터
(주)디스테이션
세기의 재판, 영화가 되다
흔히 아이히만은 사회학자 한나 아렌트의 <뉴요커> 취재 및 그를 바탕으로 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오늘의 대중과 만난다. 사실 이보다는 책의 요체라 해도 좋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언급으로 대중에게 기억된다. 대단한 악마가 아닌,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개인 아이히만이 특정한 상황에 놓여 홀로코스트 같은 악행을 기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이 아렌트의 판단이었다. 아렌트는 사형선고에 공감하면서도 그가 우리 중 흔히 발견되는 평범한 존재이며, 당대 나치 독일의 법과 명령에 충직한 결과가 이 같은 범죄라고 주장한다.
영화 <아이히만 쇼>는 1961년 봄 예루살렘에서 이뤄진 아이히만 재판을 다룬다. 영화엔 정부의 허가를 얻어 재판을 촬영해 중계하려는 촬영팀이 등장한다. 제작자인 밀턴 프루트만(마틴 프리먼 분)과 PD 레오 허위츠(안소니 라파글리아 분)가 그 주역으로, 정부와 달리 촬영을 허가하지 않으려던 재판부를 설득하고 협박에도 굴하지 않으며 아이히만 재판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1961년에 있었던 미국의 쿠바 침공이며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등 세계사적 사건 가운데 아이히만 재판에 대중의 관심을 붙든 역할을 이들이 수행해 낸다.
영화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촬영과 방영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박하게 담긴다. 제작진 상당수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에 수감된 적 있는 유태인들로 구성돼 있고, 재판에 나온 증인들의 처참한 증언들도 일부 담겨 그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어떤 수준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촬영 중 충격적인 증언이 나오자 호흡을 하지 못하는 카메라맨의 모습이라거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깊이 하지 못하는 모습 등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영화에선 프루트만과 허위츠가 수차례 논쟁을 벌이는 과정이 인상 깊게 등장한다. 프루트만은 이 사건을 높은 시청률 가운데 무탈하게 방송하고 것이 의미 있다 생각하는 반면, 허위츠는 아이히만에게서 그 내면에 깃든 악의 근원을 포착하는데 집중한다. 때문에 시청률이 더 나올 수 있는 장면들을 놓치게도 되고, 프루트만과 갈등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