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 유어 베드> 스틸컷
(주)트리플픽쳐스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폭력과 온몸에 든 멍자국. 쉴틈도 없이 가해져 오는 성적 가학. 모든 일상을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영화 <언더 유어 베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폭력적인 남편에게 길들여진 아내의 모습을 전사하며 시작된다. 이는 물렁한 기대를 안고 스크린 앞을 찾은 관객들에 대한 선전 포고와도 같다. 수용자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소설가 오이시 게이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부터 여러 가지 눈길을 끄는 부분이 많다. 일본 감독이 한국의 스태프와 배우를 만나 협업했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연출을 맡은 사부 감독은 일본의 청춘영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동안 보여줬던 결과물을 생각하면 폭력과 관음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소재도 매칭이 잘 되지 않을뿐더러, 굳이 한국에까지 건너와 연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최근까지도 일본 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 모두를 스스로 작업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출해 왔던 것을 뒤집은 선택 역시 이번 작품에서 달라진 점이다. 어쩌면 이번 작업은 감독이 그동안 보내왔던 작업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시도된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이와 같은 작품은 모 아니면 도의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02.
이 작품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의 폭행과 강간으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자 예은(이윤우 분)과 그런 그녀를 손에 쥐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남편 형오(신수항 분), 그리고 숨죽인 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남자 지훈(이지훈 분)이다. 이들은 각자의 그릇된 사랑과 트라우마로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영화는 그 모습을 방관하며 욕망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훈의 기억을 따르며 진행된다. 스무 살, 대학교의 한 수업에서 예은을 만나 잠깐이지만 첫사랑을 간직하게 된 그는 이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9년 후 우연히 만난 예은에게 강하게 이끌리지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지훈은 깊이 간직해 두었던 사랑을 구원하기 위해 치밀하게 그 곁을 맴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전부를 느끼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예은이 처해있는 폭력적인 일상뿐이다.
예은을 중심으로 한 두 남자 형오와 지훈은 서로 다른 종류의 폭력을 내재한다. 바로 곁에서 자신의 욕망을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 쏟아내고 터뜨리는 남편과 달리 지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접근해 온다. 두 사람이 보이는 방식의 차이는 이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 서사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는 폭력과 관음, 스토킹과 가스라이팅 속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존재할 수 있는지, 존재한다면 어느 쪽에 놓여 있는지를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