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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니까 양보하라는 게 무슨 말인가요, 선생님?

[넘버링 무비 335]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 로컬시네마 2 <점핑클럽> 외 2편

23.12.06 15:57최종업데이트23.12.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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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점핑클럽>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점핑클럽
채지희 / 2023 / 극영화 / 20분

지호는 줄넘기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 학원 선생님의 배려 아닌 배려 때문이다. 지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친구 유정과 줄넘기 대결을 시켰다. 두 사람이 반에서 제일 잘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자니까 먼저 양보해서 져주라는 식으로 지호의 승리를 선언한다. 공정한 대결에 남자가 웬 말인가.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지만 강요에 의해 양보를 했던 유정도, 원하지 않던 억지 배려로 이긴 지호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정말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이긴 것일까?

영화 <점핑클럽>은 어린이들이 자기답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채지희 감독의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 그 이외의 것들로 인해 달라지는 결과를 받아 들고 어딘가에 소속되게 되는 일에 대한 우려와 경계의 시선이 그 바탕에 있다. 극 중 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불합리한 사정은 줄넘기 학원에서만이 아니다.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아이를 두고 주인 아주머니는 적절한 대처 대신 친구를 발색하는 일에 더 열을 올리고, 지호의 엄마는 딸에게 여자애가 좀 예쁘게 누우라며 타박을 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서로를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어른의 사정을 따른다. 남자와 여자, 성(性)을 갈라 어울리며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배척하는 것은 물론 서로 할 수 있는 놀이가 다르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유정이 다소 어려움을 겪고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남자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나 의지는 조금도 놓여 있는 것 같지 않다.

후반부에 이르러 줄넘기 학원 선생님의 잘못된 행동에 아이들이 항의를 하며 뛰쳐나가는 장면, 먼저 뛰쳐나간 지호와 유정을 뒤따른 이들이 함께 계단을 오르는 장면의 화면비를 키우는 방식의 기술적 장치를 통해서 영화는 이 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시선에 순수하게 맞설 줄 알고, 함께인 공간에서 차별이나 그 어떤 불편함 없이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어지는 모두의 줄넘기를 사랑스럽고 벅찬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우리, 다시 경기할래?"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부유>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2.
부유
태자경 / 2022 / 극영화 / 17분

각종 고지서가 어지럽게 쌓여 있고 가스도 끊긴 것 같다. 심지어 같이 살던 집을 비우고 더 좁고 불안한 곳으로 내몰리게 된 유(流)와 준(遵)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조금 뒤틀려 가는 것 같다. 현재도 내일도, 일상의 모두가.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랜 극단 생활을 해왔던 준(정지훈 분)은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유(조인영 분)는 영세한 미용실의 스태프로 일하며 그런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한다. 다른 커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카페 데이트도 지금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아직 내일을 놓지 않고 있다. 얼마나 가느다란 실로 지금을 이어 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화 <부유>는 특별한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한편에 감추어 둔 작은 불안을 태동시키는 작품이다. 극 중 두 인물이 내뱉는 작은 단어들과 좁은 몸짓이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나부끼는 불안한 내일을 더욱 증폭시킨다. 문제는 그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한 불편한 사실이 이제 더 이상 추측이나 예상의 범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상상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은 막막함. 바로 그 앞에서 영화는 이들의 마음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정서까지 흔들어 놓는다.

두 사람이 아무 곳에나 버리고 싶지 않다는 소파를 제대로 버릴 장소를 찾아 기묘한 동행을 시작할 때 그들의 주변을 부유하던 문제들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헤어질까?'라는 두 사람 사이의 첫 대화는 그동안 모른척하며 미뤄두었던 현실을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이 관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지연시켜 온 일이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이제 그 호흡을 멈출 때가 되었다. 대화의 부재가 비켜난 자리에 이별의 전조가 머리를 들이민다.

부유하는 사랑은 자리를 보고 안착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안착한 사랑은 다시금 부유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없는 자리 위에는 내일의 문제와 의문이 떠다닐 뿐이다. 두 사람의 소파가 버려지는 날, 이들도 그렇게 이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브릿지>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브릿지
김소현 / 2023 / 애니메이션 / 6분

평화로운 어느 숲에서 바위 하나가 눈을 뜬다. 무생물인 '골렘'이다. 우연히 절벽 사이의 다리가 되어 숲 속 동물들을 돕게 된 바위는 자신의 사소한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다른 절벽 사이에 비버 무리가 만든 나무다리가 하나둘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허물어지고 만다. 더 이상 자신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실망감 때문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 때 더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무해한 방식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으로 받아들일 때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 <브릿지>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동화적으로 구성된 이미지를 통해 화합이라는 의미를 구현해 내며 이를 상쇄시킨다.

이 작품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무생물인 바위와 생물인 동물 가족의 만남이 서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자신의 재능과 기술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자존감'의 측면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의 후반에 놓여 있는 사건, 다리의 붕괴는 이 두 가지 목적을 한 자리에 묶어내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결국 영화는 하나의 내일을 그려내며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버 가족은 비버 가족 나름대로 절벽 사이의 다리를 만들며 제 몫을 해낼 것이고, 바위 골렘은 또 바위 골렘대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점핑클럽 부유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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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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