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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엔딩 가진 이 영화... 결말이 '다 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597] <마이클 클레이튼>

23.11.28 11:56최종업데이트23.11.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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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훌륭한 영화는 이래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소재부터 매력적인 캐릭터, 선입견을 깨뜨리는 설정과 전개, 보는 이를 감탄케 하는 끝내주는 연출, 영화를 보고난 뒤에도 귓가에 맴도는 음악까지 멋진 영화의 존건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느날 누군가 내게 걸작과 평작을 구분하는 법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설 때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작품이야말로 걸작이라고 말이다. 볼 때 아무리 재미있어도 일어날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영화가 있는 반면, 어떤 영화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부터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영화의 여운이 질을 결정한다면, 좋은 영화의 조건으로 결말을 빼놓을 수는 없을 테다. 노래방에서 두어 시간을 즐겁게 놀고도 나오면 마지막 곡을 흥얼거리게 되듯이, 영화 또한 결말의 감흥이 여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 마이클 클레이튼 포스터 ⓒ 누리픽처스

 
엔딩이 끝내주는 영화들
 
그렇다. 이번 '씨네만세'에선 엔딩이 끝내주는 영화를 다룰 테다. 엔딩이 인상적인 영화야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남다른 엔딩으로 기억되는 작품을 말하려 한다. 누군가는 엔딩은 역시 본 시리즈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2002년 작 <본 아이덴티티>로부터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을 거쳐 <제이슨 본>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정체돼 있던 첩보물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액션이면 액션, 촬영이면 촬영, 캐릭터면 캐릭터까지 남다른 곳 투성이인 이 작품의 압권은 역시 엔딩이다. 보는 이의 예상을 깨뜨리는 반전의 결말과 이때 흐르는 Moby의 곡 'Extreme Ways'는 관객에게 최고의 첩보영화를 보았음을 일깨운다. 시리즈가 지속되는 동안 바뀌지 않은 엔딩곡과 끝내주는 엔딩시퀀스는 어느새 본 시리즈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테다.
 
엔딩이 멋진 영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타인의 삶>이다. 분단된 독일을 배경으로 음지에서 저항운동을 하던 예술가 드라이만을 도청하는 비밀경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독일 영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이 영화는 꼭 제게 걸맞는 엔딩을 가진 것으로도 명성이 높다. 제목 그대로 타인의 삶을 엿들어야 하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차츰 그들의 사연에 젖어든다. 당대 동독사회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그에 눌려 비틀리는 이들의 삶까지 함께 느끼며 도청기 너머 괴로워하는 모습이 훌륭히 연출된다.
 

▲ 마이클 클레이튼 스틸컷 ⓒ 누리픽처스

 
영화를 끝내는 매력적인 방식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진다. 통일된 조국에서 드라이만은 제 모든 말이 도청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저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수많은 동지들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뒤에 저를 도청하던 이의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통일된 독일에서 우편배달부로 살아가는 비즐러가 드라이만이 쓴 책 광고를 보고 서점에 들어가는 장면을 담아낸다.
 
비즐러가 들춘 책 내지엔 그의 암호명인 HGW XX/7에게 책을 바친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비즐러는 책을 집어 계산대로 간다. 점원이 책을 포장해줄지를 묻자 비즐러가 답하는 말이 일품이다.
 
"Nein, das ist für mich.(아니오, 저를 위한 것입니다.)"
 
비즐러가 타인의 삶에 동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삶에 새로이 눈뜬 것이라는 걸, 영화는 그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선명히 드러낸다. 폭압의 시대 비밀경찰로 살았던 비즐러는 제 선택으로써 저의 삶을 바꾸어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훌륭한 대사와 엔딩은 흔치가 않다.
 

▲ 마이클 클레이튼 스틸컷 ⓒ 누리픽처스

 
초국적 기업 비밀 파헤치는 변호사
 
모든 것은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앞의 영화들이야 워낙 걸작이어서 영화를 파고드는 과정에서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마이클 클레이튼>은 그와 전혀 다른 지위를 지니고 있고, 많은 이들이 지나간 영화쯤으로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주연한 조지 클루니와 그가 전면을 차지한 멋드러진 포스터가 아니었다면 영화를 기억하는 이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초국적 기업 U/노스를 둘러싼 소송에 대한 이야기다.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 분)은 40대 중반의 이혼남으로, 이따금 아들을 만나는 걸 제외하면 쓸쓸하기만 한 삶을 살아간다. 뉴욕 일류 로펌에 속한 변호사라고는 하지만 전담하는 역할이라곤 다른 변호사들이 꺼리는 어둠의 영역에서 뒷수습을 하는 게 고작이다. 합법적으로만 대응할 수 없는 사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는 사나이, 그게 해결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마이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이자 동료인 아서 에든스(톰 윌킨스 분)이 U/노스 소송 과정에서 옷을 벗고 난동을 피우는 일이 발생한다. 사건이 잘못되면 수백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지 못할까 염려한 로펌 수뇌부가 마이클을 사건에 투입한 배경이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아서를 클레이튼은 좀처럼 믿지 못한다.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지까지 논의하는 와중에 아서는 제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마이클이 아서의 죽음을 추적하며 U/노스의 음모가 담겨 있는 자료를 얻는 과정을 잡아낸다. 그가 회사가 그릇된 기업활동으로 486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며 마이클의 주변 또한 안전하지 않게 된다. 제 회사조차 저를 지켜주지 않는 가운데 주변에선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마침내 마이클의 차가 거대한 폭발로 불타기에 이른다.
 

▲ 마이클 클레이튼 스틸컷 ⓒ 누리픽처스

 
결말 하나로도 2시간을 견딜 가치가 있다
 
흥미로운 건 영화를 연출한 이가 앞에 언급한 본 시리즈의 외전 격인 <본 레거시>의 감독 토니 길로이라는 점이다. 긴장감 있는 연출과 엔딩을 만드는 법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도 제 장기를 십분 활용하려 든다. 불행히도 영화는 그 구성과 전개에 있어 많은 실패를 거듭한다.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워야 할 장르가 길을 찾지 못하는 미스터리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영화에 지루함을 참아내기 어렵다는 평이 따라붙곤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이가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그건 영화가 남다른 엔딩 시퀀스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평론가 가운데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이동진 또한 이 영화를 평하며 '2007년의 라스트신!'이라고 단평을 썼을 정도다. 그의 평에 신뢰성이 있느냐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결말이 주는 충격이 과연 그러해서, 수준 높은 평론가며 저잣거리의 어느 관객까지도 하나같이 그 결말에는 만족을 표할 정도라 하겠다.
 
<설국열차>로 한국에도 인지도 높은 배우가 된 틸다 스윈튼과 마이클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가 맞서 벌이는 결말의 대화는 잘 만들어진 엔딩이 수렁에 빠진 영화 전체를 건져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오로지 그 결말을 보기 위하여 2시간 가까운 지루함을 견뎌낼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 시간을 견뎌야만 엔딩에서 그와 같은 감상을 가질 수 있으므로.
 
세상에 이와 같은 평을 받는 엔딩은 그리 많지 않다. 끝내주는 맺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이가 있다면 <마이클 클레이튼>을 추천할 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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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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