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위한 식탁스틸컷
필름다빈
여성서사가 외면하는 아빠의 자리
상옥은 말한다. 제가 엄마와 모녀사이인 게 싫은 것과, 제가 딸과 모녀사이이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곤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의 조문객을 받지 않았을 만큼 괴로운 사이로 지내왔음을 알리고, 제가 사랑하는 딸 또한 엄마로부터 저를 거치는 3대의 연결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깨닫는다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영화가 깊이 담아내지 못한 이 가족의 3대에 걸친 여성 서사 가운데 누구도 온전한 승리자는 없다.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그로부터 생긴 엄마에 대한 불만과 미움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피해자들만 있을 뿐이다.
채영은 이에 대해 "우리 엄마가 저 엄마보다는 괜찮은 엄마구나" 싶었다고 말하면서도 "엄마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밑바닥을 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찌르는 말들이 오가는 동안, 너무 많은 시간과 사연이 자리해 말 몇 마디로 이를 수 없는 간격이 둘 사이에 생겼음만 깨닫게 된다. 엄마는 다가서려 하지만, 딸과의 사이엔 영원한 평행선이 놓여 있다. "너랑 나랑은 영원한 평행선일까?"하고 묻는 엄마에게 "평행선도 나쁘지 않아"하고 말하는 딸의 모습은 끝끝내 좁혀지지 못할,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내내 아빠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채영으로부터 상옥을 거쳐 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채영이 자연스레 느꼈을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는 단 한줌의 정보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적 집중으로부터 누구는 연대기적 여성서사가 주는 특별한 감흥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 아래 자리한 여러 이유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데는 편협한 시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엄마와 딸의 복잡미묘한 관계로부터, 개인사에서 연유한 거식증이란 질병, 그로부터 건강한 나를 되찾으려는 발버둥까지를 여성 중심의 시각에서 짚어나가는 보기 드문 영화다. 바로 이 점만으로도 이 영화에 기꺼이 박수를 치려는 관객이 적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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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