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 제너레이션스틸컷
왓챠
남성성 거세된 미래사회가 주는 이질적 폭력
재정적 부담까지 크게 완화해준 회사의 제안에 레이첼은 마음이 동한다. 다만 순리에 따른 삶을 선호하는 남편을 설득할 길이 막막할 뿐이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레이첼은 마침내 남편에게 일을 털어놓는다. 약간의 의견충돌이 있지만, 논리로는 레이첼을 당해낼 수 없는 일이다. 임신이란 여성이 제 몸으로 아이를 품는 일이고, 거의 전적으로 엄마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 여성이 직접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데 누가 나서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시대는 오늘보다 여성성이 훨씬 더 존중받는 미래상이다. 꿈틀대는 정자들을 향하여 내뱉어지는 테크회사 직원의 모욕적인 대사는 난자에 대한 존중어린 말과 맞물려 영화의 의도를 선명하게 내보인다. 그뿐인가. 남편과 함께 업체를 찾은 레이첼 앞에서 딸을 낳기 위해선 y유전자가 필요치 않으니 남편 없는 임신을 고려해도 좋다고 말하는 업체 직원의 말 앞에 엘리는 이렇다 할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할 뿐이다.
업무적으로도, 남성적으로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엘리의 상황은 보는 이에게 일종의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마초이즘이며 남성성은 발전된 사회에선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강력한 페미니즘은 마초이즘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남성성마저 짓누른다. 남성성이 거세된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가 도리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억누르는 역설적 광경이 보는 남성 관객에게 지적 흥미와 내적 불편을 동시에 자아낸다.
영화는 결국 설득된 엘리가 레이첼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진전된다. 둘의 아이가 팟에서 자라나고, 이들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뀐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영화는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키워지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모성의 주도권을 레이첼이 아닌 엘리가 차지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팟을 더욱 소중히 돌보기 시작하는 엘리에게 레이첼은 어딘지 불편함을 느낀다. 다른 남편들과 달리 팟을 엄마처럼 앞으로 매는 모습과 이를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레이첼의 모습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팟을 더욱 가까이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엘리의 모습은 모성의 상당부분은 생물적 본능이 아닌 사회적 요구며 심리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란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
영화는 아이가 점차 커나가며 테크업체의 방식에 문제를 느끼는 부부의 모습을 충실하게 포착한다. 국가가 배제된 의료의 영역에서 업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믿어지는 원칙들을 아무렇지 않게 포기한다. 누군가 팟에서 태어난 아이는 꿈을 꾸지 못한다고 말하면, 꿈 정도는 별 문제가 없다고 외면하는 식이다.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한 규제탈피에 정부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스웨덴에서 견학 온 예비부부의 물음에 답하는 업체 직원의 모습은 마치 비급여의료의 무분별한 상업화를 비판하는 이에게 흔히 주어지는 의료계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