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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고 쓰러지는 승려... 이 장면에 담긴 의미

[김성호의 씨네만세 558] <크리에이터>

23.10.06 14:50최종업데이트23.10.0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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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고 싶지 않다. 가렛 에드워즈 특유의, 그래 이제는 특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특유의 연출이 고스란히 묻어난 영화가 또 한 번 반복되었을 뿐이다. <고질라>부터 <몬스터즈> 시리즈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 이어 <크리에이터>까지 에드워즈의 영화는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화려함과 최대의 규모, 또 그에 정확히 반하는 빈약한 내면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글에선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단 영화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담론에 집중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때로 한 편의 영화는 그것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가치를 빚어내기도 한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겐 이 영화가 그저 화려하기만 한 블록버스터로 스쳐지나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평소에는 좀처럼 닿기 어려운 깊고 귀한 생각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다.
 
 <크리에이터> 포스터
<크리에이터> 포스터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AI와의 대결, 왜 한가롭게 거니는 소에 주목하는가
 
영화는 미래에 인간과 AI로봇이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가 AI로봇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서방과 달리 AI로봇을 금지하지 않고 이들에게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주는 이들이 있다. 뉴아시아라 불리는 지역으로, 영화 속 단서로 짐작하자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일대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서방의 기술과 뉴아시아의 자연을 수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대비한다. 뉴아시아엔 수많은 AI로봇이 살아가고, 이들이 경찰이며 군대의 역할까지 상당부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비출 때면 끝없이 펼쳐진 논과 숲, 그리고 바다와 같은 자연광경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반면 서방세계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가득 깔린 도시로 그려지니 두 세계의 대비가 선명하다 하겠다.
 
에드워즈는 영화 가운데 수차례에 걸쳐 의미심장한 영상을 삽입한다. 미국이 특수부대를 보내 뉴아시아 일대를 타격하는 장면마다 이들의 전통적인 소가 거리를, 또 논을 오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어느 한 장면에서의 자연스러운 배경을 넘어 반복적으로, 때로는 슬로우 효과까지 걸어가며 소의 모습을 잡아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에드워즈에게 소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고 자연의 일부로써, 이를 침탈한 서방세계와 대치되는 존재로 여겨진 때문일 테다.
 
 <크리에이터> 스틸컷
<크리에이터> 스틸컷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총구 앞에 쓰러지는 승려들의 모습
 
후반부엔 또 다른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엔 승려들이다. 역시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시아의 모습을 담아낼 때 흔히 쓰는 인기 피사체다. 노란 계통의 남방 승복을 입은 남방 승려들이 미군이 겨눈 총부리 앞에 맥없이 쓰러져 간다. 몇은 먼저 다가서다 죽고, 몇은 붙들려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위에 올린 채로 죽는다. 무저항의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방적인 학살이다.
 
이 같은 모습은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여러 작품에서 마주한 적이 있을 테다.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다 해도 좋을 이러한 이미지엔 분명한 원전이 있으니, 중국이 지난 반세기 이상 이어온 티베트 학살이다. 1950년 있었던 티베트 침공과 1956년의 재침에서 100만 명이 훌쩍 넘는 티베트인이 죽임을 당했다. 1965년엔 군대가 티베트 사원을 대대적으로 파괴했고, 1989년과 1995년에도 큰 규모의 학살이며 탄압이 자행됐다. 인도에 망명한 달라이 라마는 같은 기간 동안 서방세계의 유명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중국과 사회주의의 폭력성에 대항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1963년 미국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의 종교탄압으로 틱꽝득 스님의 분신자살이 사진작가의 생생한 보도로 세상을 놀라게 하니, 노란 승복을 입은 승려들과 국가폭력의 대비는 세계인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게 된 것이다.
 
 <크리에이터> 스틸컷
<크리에이터> 스틸컷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물림되어온 인간의 폭력, 우리는 다른가
 
요컨대 영화엔 소와 승려의 모습이 거듭 지나간다. 에드워즈의 시선에서 소는 가축이며 승려는 무력하게 폭력에 노출돼온 힘없는 민중의 대표주자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두 존재는 대물림되어온 인간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삼은 건 역사의 탄생보다도 오래된 일이다. 말하자면 선사시대부터 가축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개와 소, 양과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을 길들여 그 쓰임으로부터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틀림없이 공생이었을 것인데, 인간과 가축의 관계는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지극히 폭력적인 무엇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공장식 축산이란 이름으로 대형화된 축산체계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가축에게 최소한의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각종 호르몬주사며 거세 등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더 맛 좋은 고기를 더 많이 얻는 데 초점을 맞춰 동물을 사육한다. 그 비윤리성은 지난 십 수 년 간 급증한 가축전염병과 인수공통전염병의 발병으로 돌아와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지난 십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만 무려 1억이 넘는 생명을 땅 속에 파묻었던 것이다. 인간을 위해 개량되고 살아가는 존재를 병에 걸렸다는, 심지어는 예방적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대부분은 병에 걸리지도 않았음에도 살해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군인과 지역 하급 공무원의 손으로 자루에 산 닭을 십 수 마리씩 넣고, 돼지를 구덩이에 빠뜨려 생매장하는 통에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지만, 그런 험한 곳에 가본 적 없는 높으신 정책 결정권자들은 이러한 체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가축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만큼 인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크리에이터> 스틸컷
<크리에이터> 스틸컷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약한 이를 다루는 방식 만큼 우리는 존엄하다
 
이러한 폭력성은 그대로 사람에게 이어진다. 양반이 노예에게, 백인이 유색인종에게 행해왔던 폭력은 저들이 제 가축에게 행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다. 점령군이 승려들을 몰아서 가두고 불태워죽이고 무릎 꿇려 쏘아 죽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노예와 유색인종, 점령지의 승려들이 저와 같은 인간이 아니었을 테다. 차라리 가축과 비슷한 무엇이었을 테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에이터>가 소와 승려를 거듭 등장시키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제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AI로봇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들이 가진 영혼이며 미덕, 그들이 빚어낼 수 있는 가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우리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지난 시간 동안 소와 승려들과 노예들과 힘없는 약자들에게 수도 없이 해왔던 일을 이번엔 AI로봇에게 할 뿐인 것이다.
 
영화를 보며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떠올리게 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다. AI로봇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그들을 제거 하겠다 나서는 이들의 모습으로부터 오늘 한국사회에 상존하는 폭력을 떠올린다. 쓸모없어진, 혹은 위협이 될 가능성(병에 감염돼 재산상 피해를 야기할 염려)이 있는 동물들을 몽땅 몰아다 땅에 파묻는 인간들이 과연 영화 속 서방세계의 군인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같은 행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는 고기를 안 먹느냐 거나, 석유제품을 쓰지 않느냐고 조롱하는 것이 제 길을 막는 승려를 때리고 무릎 꿇리는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크리에이터>는 이 같은 이야기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있을 뿐이지만, 나는 이러한 이야기야말로 이 영화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귀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영화 속 인간들처럼 AI로봇 또한 착취하고 괴롭히고 마침내 살처분할 모든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렛 에드워즈 존 데이비드 워싱턴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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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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