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물림되어온 인간의 폭력, 우리는 다른가
요컨대 영화엔 소와 승려의 모습이 거듭 지나간다. 에드워즈의 시선에서 소는 가축이며 승려는 무력하게 폭력에 노출돼온 힘없는 민중의 대표주자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두 존재는 대물림되어온 인간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삼은 건 역사의 탄생보다도 오래된 일이다. 말하자면 선사시대부터 가축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인데, 개와 소, 양과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을 길들여 그 쓰임으로부터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틀림없이 공생이었을 것인데, 인간과 가축의 관계는 자본주의의 탄생부터 지극히 폭력적인 무엇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공장식 축산이란 이름으로 대형화된 축산체계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가축에게 최소한의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각종 호르몬주사며 거세 등의 방식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더 맛 좋은 고기를 더 많이 얻는 데 초점을 맞춰 동물을 사육한다. 그 비윤리성은 지난 십 수 년 간 급증한 가축전염병과 인수공통전염병의 발병으로 돌아와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지난 십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만 무려 1억이 넘는 생명을 땅 속에 파묻었던 것이다. 인간을 위해 개량되고 살아가는 존재를 병에 걸렸다는, 심지어는 예방적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대부분은 병에 걸리지도 않았음에도 살해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군인과 지역 하급 공무원의 손으로 자루에 산 닭을 십 수 마리씩 넣고, 돼지를 구덩이에 빠뜨려 생매장하는 통에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지만, 그런 험한 곳에 가본 적 없는 높으신 정책 결정권자들은 이러한 체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가축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만큼 인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