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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모두 떠난 마을... 여자와 아이들이 일구는 일상의 풍경

[김성호의 씨네만세 551]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베리테 <엘 에코>

23.09.28 10:43최종업데이트23.09.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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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에코 포스터 ⓒ 제15회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전할 수가 있다. 애써서 강조하고 비판하고 소리 내어 메시지를 읊어내지 않더라도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제15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만난 <엘 에코>가 꼭 그러한 영화였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 나를 돌아보고 상대를 알게 하는 그런 영화였다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를, 그들이 무엇에 괴로워하는지를 백 마디 말보다도 효과적으로 전하는 영화였다.
 
타티아나 후에조 감독의 이 다큐는 멕시코 북부 어느 산골마을의 일상을 다룬다.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가 주말에야 돌아온다. 주중엔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들이 남아 일상을 산다.

일상이란 이런 것이다. 양과 염소, 말을 기르고 때마다 밭에서 옥수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한다. 돈이 된다면 조금 멀리 가서 벽돌을 만들거나 하는 일도 하는데, 그마저도 일이 충분치 않다. 어쩌다 한 번씩은 가죽과 고기를 얻으려 양이나 염소를 잡는다. 남자들이 이를 가지고 시내로 나가서 팔아오는데 장사가 잘 안 될 때도 많은 모양이다.

늘 쪼들리는 주머니 사정 탓에 아이들은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특히 그 아이가 딸이라면 이후 겪게 될 상황이 보지 않아도 빤하구나 싶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나며 누군가는 남아서 계속 살아간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지만 결코 평안하지 않을 것을 보는 이도 찍는 이도 살아가는 이도 안다.
 
멀리서 보면 단조롭고 가까이서 보면 흥미진진한
 

▲ 엘 에코 스틸컷 ⓒ 제15회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영화는 멀리 보면 단조롭고 가까이 보면 흥미진진하다. 우리네 일상이 그러하듯이.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몇몇 가정은 대개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사내들은 모두 나가 있고, 남은 것은 남은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

옥수수 가루를 내어 반죽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것만 해도 한참이 가는 일거리다. 가축을 치고 부업을 하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는 태도 나지 않는다. 뼈 빠지게 일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삶 가운데 엄마는 지쳐만 간다. 이제 겨우 열 살을 넘겼을까 싶은 딸은 엄마의 일을 조금씩 넘겨받는다. 할머니를 씻기는 게, 가축을 돌보는 게, 빨래며 청소를 하는 게 모두 그런 일이다.
 
어떤 아이는 남달리 영민하다. 인형들을 앉혀두고 메머드와 멸종에 대해 강의하던 소녀는 다음 어느 장면에선 학교 교실에 앉아 소리와 그 소리를 전하는 매질, 음의 파동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이들의 그 깊은 이해와 열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이들이 어째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가를, 멕시코와 북미와 전 세계가 깊이 얽힌 교육기회의 불공정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의 자식이며 손자로 태어나 성공을 돈으로 사는 이들을, 제 앞에 널린 기회를 전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을, 기울어진 운동장을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이지 안타까운 건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에겐 흔한 기회에조차 닿지 못하는 이들의 사정이다. 바로 그러한 사정이 <엘 에코> 안에 아무렇지 않게 담겨 있다. 이들에겐 그와 같은 기회의 단절 또한 일상인 것이다.
 
어떤 아이는 서럽다. 남달리 말을 좋아하는 소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말에게 먹이를 주고 털을 빗기고 콧등을 쓰다듬는다. 말의 머리를 끌어안고 가만히 서서 저의 꿈을 속삭인다. 말 등에 올라 우랴앗 하고 소리를 치고 달리는 말 위에서 깔깔깔 환호하는 아이다. 그것이 소녀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리라고 나 아닌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아이가 엄마 몰래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며칠 뒤 열리는 작은 경주대회에서 기수로 출전하기로 한 것이다. 말이 있고, 저는 말을 탈 줄 아니, 조건은 충족됐다 하겠다. 넘을 것은 오로지 엄마의 반대뿐인데, 소녀는 끝끝내 그 반대를 넘지 못한다.
 
이 마을에 소녀보다 말을 타고 달리는 일을 잘 하는 이가 없다. 이 마을에 소녀보다 말을 타고 달리는 일을 좋아하는 이가 없다. 소녀가 소녀가 아니었다면, 소녀가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소녀가 집에서 엄마의 일을 도와야 하지 않았다면, 소녀가 사내여서 말을 타는 일이 자랑이 될 수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 가난한 마을의 소녀여서 마을을 떠나야 한다. 엄마는 이 가난한 마을의 엄마여서 딸을 잃어야 한다. 영화는 그러나 이 또한 이 마을의 일상으로, 언제고 있을 수 있는 일로써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그려낼 뿐 주장하지 않는 이 이야기로부터 나는 어째서 누구에겐 꿈이 죄가 되어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 엘 에코 스틸컷 ⓒ 제15회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일상은 계속되는 것이다. 기쁜 것도 기쁜 채로만 있을 수 없고 슬픈 일도 슬프게만 남겨지지 않는다. 주말을 맞아 집에 온 사내들이 염소를 잡는다. 염소를 잡아 가죽과 고기를 팔겠다는 것이다. 하얀 염소 한 마리가 언덕의 너른 바위 근처로 잡혀온다. 어른들이 염소의 네 발을 줄로 묶는다. 묶인 염소를 바위에 눕힌 뒤 한 사내가 그를 붙든다. 다른 사내가 칼을 들어서 염소의 목에 가져다 댄다. 마치 뒤에 사람이 없는 듯 조용히 비추기만 하던 카메라가 처음으로 고개를 튼다. 아주 잠깐, 염소의 목에 칼이 들어가는 그 순간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염소의 비명도 그대로 담아낸다. 고통은 얼마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들이 염소를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해체하는 모습을 본다. 그 죽음으로 저들의 삶이 이어지는 모습을 배운다.
 
지난 10년간 땅 속에 파묻은 가축만 1억 마리를 헤아린다. 한반도 남쪽의 이야기다. 조류독감이니 구제역이니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니 하는 가축전염병 유행은 예방적 살처분이란 대량학살의 참극을 불러왔다. 땅을 파고 감염도 되지 않은 가축을 수백 수천씩 밀어 넣고 파묻는 이 참극이 있기까지 공장식 축산이란 이름으로 행해져온 가축의 번식과 비육방식의 영향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디서나 쉽게 고기와 달걀과 우유를 먹는 한국인들이 정작 돼지와 젖소와 닭의 삶이며 죽음을 보지 못하고 산다는 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엘 에코> 속 가축의 일상이 우리의 비겁과 잔혹을 일깨운다.
 
할머니와 엄마와 아이들이 마을에서 일상을 난다. 남자들이 마을을 비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가족이 멕시코의 외딴 마을을 일구고 산다. 얼마 전 본 다큐 <양지뜸>은 사드가 들어선 소성리 마을 할매들의 저항기를 다루었다. 마을에 어느 날 굉음이며 전자파를 내뿜는 미군 무기가 들어섰는데, 이에 저항하는 마을 사람들은 죄다 팔순이 훌쩍 넘은 할매들 뿐이다. 마을에는 청년도 아이도 없다. 이처럼 텅 빈 마을이 한국의 평범한 모습이란 걸 왜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도시라고 얼마 다르지 않다. 원룸에 사는 1인가구는 더는 이상하지 않은, 일반적인 삶의 형태로 여겨진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며 결혼을 않는 나이든 청년들, 그나마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의 핵가족 형태까지, 그 역사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가구의 모습이 한국 가정의 전형을 이루었다. 3대나 4대가 함께 사는, 바글바글 아이들이 떠들고 서로서로 싸우다 화해하는 그런 가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엘 에코> 속 가족의 모습들과 그로부터 겪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무리동물로 태어나 속한 무리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고야 만다.
 
<엘 에코>는 제목 그대로 자연을 그리는 영화다. 자연 속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자체로 자연을 이룬다. 그 자연이 더는 자연스럽지 못한 나의 일상을 다른 시각에서 생각하게 한다. 또 그들의 자연이 희생시키고 있는 아까운 것에 대해서도 다시 보도록 한다. 개척되어야만 하는 자연과 복원되어야만 하는 자연이 내 앞에 함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사내들이 떠나고 여자와 아이들만 남은 멕시코 외딴 마을의 모습을 다룬 다큐 <남겨진 것들을 위한 기도>로 세계 영화제를 휩쓴 타티아나 후에조 감독이다. <엘 에코>는 전작과 얼마 다르지 않은 배경이지만, 전작과 제법 다른 방식으로 울림을 전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필요한 모든 말을 하는 것이 자연과 닮아 있는 듯하다. 나는 이런 방식의 다큐를 처음 보았다. 소리쳐 일깨우는 다큐만이 인간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이로부터 알았다.
 

▲ 엘 에코 스틸컷 ⓒ 제15회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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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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