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우리 새끼>(SBS). 김준호가 연인 김지민 본가에 방문해 예비 장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고은
이번 추석에도 정상가족을 공고하게 다듬는 가족 예능이 특집 방송을 꾸려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지난 17일, <미운 우리 새끼>(SBS)는 개그맨 김준호가 연인 김지민의 본가에 찾아가 예비 장모님을 만나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예비 장모님에게 딸의 남편 자격을 공인받는 자리로서 김지민 어머니와 김준호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김준호는 "금주와 거짓말 안 하기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말로 어필하고 김지민 동생은 "교제 사실을 알고 어땠냐?"는 질문에 "되게 싫었죠"라고 받아친다. 이때 김준호는 당황하고 시청자는 웃는다. 어느새 저항 없이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게 왜 웃길까? '왜'라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 웃음은 막강하다. 명절에 처가에 간 사위는 장모에게 쩔쩔매지만 백년손님이기 때문에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받고 시댁에 간 며느리가 '시댁 혹은 처가 방문' 논쟁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명절 레퍼토리다. 설명하지 않아도 대중이 납득하는 가족의 대소사, 이것이 명절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제시하는 가족예능에는 이성애 중심 4인 가족만이 정상이라는 전제가 있다.
결혼 적령기에 연인이 있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한국에서 평생 방송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국에는 결혼제도로 맺어지는 이성애 부부와 그들의 자녀가 주인공이 되는 가족 예능이 많다.
한국 가족 예능의 시작과 변화
2013~2014년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 <아빠 어디가?>(MBC)를 기점으로 가족 예능이 큰 인기를 얻자, 가족 관찰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표현이 서툰 아빠와 딸의 좌충우돌을 다룬 <아빠를 부탁해>(SBS)부터 나이 든 엄마가 화자가 되어 다 큰 아들 일상을 관찰하는 <미운 우리 새끼>(SBS)까지. 4인 가족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재료로 요리한 예능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 가족 예능이 진화한 점이라면 가정 평화뿐만 아니라 가정 붕괴의 전조 혹은 그 산물도 콘텐츠로 만들어 버린다는 거다. <오은영의 리포트 – 결혼지옥>(MBC)은 금전, 대화 단절, 가정 폭력 등의 문제로 솔루션이 필요한 부부들을 관찰한 후 '오은영' 박사가 솔루션을 주는 방송이다. '행복에 목마른 네 남자의 토크쇼'라 소개하는 <신발벗고 돌싱포맨>(SBS)에는 이혼 경력이 있는 중년 남자 넷이 나온다. 회차를 이어갈수록 앞서 말한 '행복'이 사실 실패를 딛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게 넌지시 보인다.
지난 8월, 한반도미래연구원이 진행한 2030세대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 심층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 청년 10명 중 4명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 남성은 '경제적 불안정(42.6%)'과 '결혼 조건 맞추기의 어려움(40.8%)'을 뽑았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 남성이 늘어남에도 TV속에는 여전히 연애, 결혼, 이혼으로 꼬리 무는 남성 중심 가족 이야기가 넘친다.
다양한 가족이 나오는 명절 예능이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