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메모리> 스틸컷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라지는 기억 사이 흘러가는 현대사
또 어느 날 파울리나는 반나절 동안 저를 알아보지 못해 애를 먹인 남편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는지를 하소연한다. 그러자 남편은 제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그녀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가장 귀한 것들까지 산산이 흩어버리는 이 몹쓸 질병으로부터 아우구스토와 파울리나가 저들의 기억을 지켜내려는 투쟁이 힘겹다.
이들의 고통 사이사이 굴곡진 칠레의 현대사가 흘러내린다. 한국과도 꼭 닮아 있는 칠레의 역사가, 군부의 쿠데타와 고통으로 점철된 민주화항쟁이, 또 마침내 이뤄진 승리가 우리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아우구스토의 가까운 친구는 피노체트의 부하들에게 잡혀가 어느날 시체로 발견된다. 목이 그어진 채 발견된 그 시체는 그저 본보기였을 뿐이었다고, 아우구스토는 아무렇지 않은 듯 회상하다 마침내 울어버린다. 아우구스토는 세상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가면서도 아주 오랫동안 그 친구의 기억을 붙든다.
귀하게 기른 자식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칠레의 어머니들과 그럼에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칠레의 젊음들과 너무나 많았던 헛된 죽음들과 그러나 마침내 맞이한 눈부신 봄을 아우구스토와 파울리타가 떠올린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를 아우구스토는 마침내 잃어만 간다. 끝없이 사라져만 가는 기억들 앞에서 두려워하는 아우구스토, 한없이 나빠지기만 하는 제 사랑 앞에 눈물을 쏟고 마는 파울리나의 모습이 애처롭다.